2024년 11월 16일(스페인 여행 3일)
여행 일기를 쓰다 잠시 멈춰 두었던 시간.
1년 전의 기억을 불러내듯 다시 글을 써본다.
스페인 여행 중 가장 짧게 들렀던 도시가 론다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주 떠올리는 곳 역시 론다이다.
아마도 이유는 ‘윈도우 배경화면’ 때문일 것이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날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그 자동 배경화면 속에
가끔 론다의 누에보 다리가 나타난다.
여행 전에는
그곳이 스페인인지, 론다인지,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저 익숙한 풍경 중 하나로 지나치던 화면.
그런데 여행 이후엔
그 사진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의 행복 스위치가 탁 하고 켜진다.
아무리 지옥 같다 생각하며 들어온 사무실이라도
론다의 절벽이 화면에 떠오르는 순간만큼은
금세 밝아지고 따뜻해진다.
그 작은 장면 하나가
사는 동안 잊기 힘든 하루를 통째로 불러낸다.
그날의 햇살,
맛있던 타파스 요리들,
식사 시간 내내 귀찮게 굴던 파리들,
아내와 딸과 함께 걸었던 중세의 골목들,
누에보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느꼈던 아찔함,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결혼식 하객들,
그리고 렌트카의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을 보고
괜히 마음이 철렁했던 순간까지.
정말 단 두 시간 남짓 머물렀던 도시일 뿐인데
기억은 분수처럼 끝없이 솟아오른다.
그때는 떠나며 후회했었다.
‘하루만 더 머물 걸 그랬다.’
11일간의 여행 중 가장 짧게 머문 도시였지만
돌아와 보니 가장 깊이 마음에 박힌 도시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이
그 길이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강렬하게,
얼마나 자주 다시 떠오르느냐가
그 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윈도우 배경화면의 스크린 속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담겨 나오지만
내 눈에 또렷이 들어오는 장소는 하나, 론다뿐이다.
여행이란 결국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하고,
그 아름다움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채우며,
때로는 잊고 지내던 일상의 순간마저
달콤하게 만드는 일종의 만능소스 같다.
팍팍한 일상도, 지루한 혼자만의 시간도,
여행의 기억 한 스푼이면
얼마든지 맛있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