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건반 위를 부지런히 오가던 손가락이 갑자기 멈췄다. 틀린 음이 나올 때마다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숨을 쉬었다. 연주는 매끄럽지 않았다. 종종 기침을 하거나, 얼굴을 매만지며 잠시 멈추곤 했다. 한동안 머리를 긁적이다가 작게 투덜거리기도 했다.
방 안은 완벽과는 거리가 먼 소리로 가득찼다. 틀린 음, 울퉁불퉁한 멜로디, 이어지는 침묵까지. 그러나 그 엉성함이 묘하게도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건반을 두드리는 불안정한 리듬 속에서 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울림을 느꼈다. 이 연주는 결코 다시 재현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완벽하지 않은 연주는 오히려 강렬했다. 실수와 중단, 예고 없이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까지, 그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살아 숨 쉬게 했다.
‘이건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하는 소리야.’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녹음한다고 해도 친구의 움직임과 그 방 안의 공기, 그 미묘한 감정까지 담아낼 순 없을 것이다. 엉망진창인 이 순간은 오직 이 자리에서만 존재하고, 이내 사라질 운명이었다. 희소성이 가치를 만든다면, 이 순간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영속성을 찬양하며 살아왔다. 생화보다는 조화를, 연필보다는 볼펜을, 말보다는 글을 아꼈다. 오래 남는 것이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친구의 연주를 들으며, 나의 믿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사라질 것들은 정말 덧없기만 한 걸까?
생화는 시들기에 더 강렬한 향기를 남긴다. 연필은 지워지기에 순간을 기록한다. 말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에 듣는 이를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결국 덧없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날 친구의 피아노 연습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깨달음을 주었다. 완벽함이 아닌 덧없음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본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덧없음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사라질 것들의 존재는 영속성만큼이나 강렬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사라질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