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이성으로
밀레투스의 탈레스는 흔히 ‘최초의 철학자’로 불립니다.
탈레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7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는 신화의 시대였습니다. 번개를 제우스의 분노, 해일을 포세이돈의 분노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해석은 자연현상을 풀어내려는 시도였지만, 구체적인 원인이나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지중해의 항구 도시들은 교역과 해양 활동을 통해 다양한 문명과 접촉하며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전해진 기하학과 바빌로니아 천문학은 자연을 더 정교하고 실용적으로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소아시아 해안에 위치한 밀레투스는 상업과 교역으로 크게 번영하여, 시민이 사유에 몰두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밀레투스의 정치 체제는 귀족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바뀌었고, 사상적 자유가 더욱 확대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탈레스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관찰과 계산을 통해 추정해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또 그리스 세계에 천문학과 기하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자연과 우주를 숫자와 원리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철학자로서 탈레스가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세계의 근원(아르케, ἀρχή)’에 대한 최초의 이성적 답변을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물이야말로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가치없는 답변에 불과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답변이 나오는 과정이 관찰과 이성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봅시다.
세계를 이루는 기본 요소(아르케)는 무엇인가?
1. 생명에 필수적이어야 한다.
2.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아야 한다.
3. 모든 존재가 그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탈레스의 답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씨앗(생명)의 발아에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고, 물은 순환할 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물은 고체(얼음), 액체(물), 기체(수증기)로 변화할 수 있으니, 만물을 구성하기 유일하며, 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명확하지만 ‘자연현상을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태도’ 자체가 서양 철학의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피타고라스는 수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변화)을,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불변)를,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근원적 원리로 삼으며 각자의 철학을 펼쳐 나갔습니다. 탈레스의 문제 제기는 이렇게 서양 철학의 거대한 전통으로 이어지게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만약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관찰과 이성을 사용한다면, 그 ‘관찰’을 신뢰할 수 있을까?"
다음은 진리란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