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에서 말하는 ‘주체(subject)’란, 세상을 인식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도덕적 법칙을 세울 수 있는 존재를 뜻합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출발한 이 개념은, 신의 권위나 전통에 기대지 않고 ‘인간 이성’ 그 자체를 출발점 삼아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신의 존재 없이도,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칸트 이후로 주체는 더 이상 외부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이성적 사유를 통해 감각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능동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때 인간은 단순히 '세상을 느끼는 자'가 아니라 세계을 만들어 가는 자이며, 동시에 도덕법칙을 자율적으로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됩니다.
그렇다면 주체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요? 17세기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 이성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고 그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나갔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고 말했듯, 자연을 관찰·실험하여 그 원리를 알아내면 이를 인류의 이익을 위해 써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데카르트 역시 인간과 자연 사이를 더욱 분명히 갈라놓았습니다. 이때 자연은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 가능한 ‘연장된 물질’이자, 인간의 이성이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인간의 정신은 완전히 사유하는 실체로서,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기술과 제도를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처럼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 주체’라는 관점은 과학 발전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큰 성과를 거두었고, 실제로 인류 사회는 급속히 번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을 무한히 개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이 초래한 환경 파괴와 생태 위기가 점차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한때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합리적 주체가 실은 자연의 복합적 질서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자각도 뒤따랐습니다.
결국, 근대 철학이 부각시킨 ‘주체’는 인간에게 세상을 재해석하고 정복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이 자연과 타 생명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점차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근대 철학이 어떻게 붕괴했는지, 주체 중심 주의가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