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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낳은 비극

by 상상혁 Feb 01. 2025

근대 철학이 확립한 주체 중심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자율성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반영하며, 과학과 기술의 발전, 인권 확립 등 인류에게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일어난 세계대전, 인종 학살, 환경 파괴, 아동 노동 등이 이성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주체 중심주의는 “주체가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지식을 통해 자연과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근대 이성은 점차 계산 가능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성의 추상화는 개인의 특성이 아닌, 그가 낳는 생산성과 가치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그 결과 열악한 노동 환경, 노동 착취 등의 비인간적 행위가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자연을 객체로 보고 이를 ‘측정·분석·개발’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인간이 자연에 군림하며 무분별한 자원 착취와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성적 판단 기준에서 벗어나는 인간 집단(소수자, 식민지 원주민, 비유럽 문화권 등)을 ‘미개한 타자’로 간주하여 폭력적으로 억압, 배제, 차별 해 온 역사도 주체 중심주의가 낳은 어두운 그림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도르노는 근대 이성이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방식인 ‘동일화(同一化)’ 과정에 폭력성이 깃들어 있다고 봅니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주체(이성) 바깥의 대상을 표준화·범주화해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이 가진 개별성이나 다양성은 무시되거나 왜곡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파시즘 정권 등의 사례는, 특정 이념이나 효율의 논리에 맞추어 개인을 하나의 ‘부품’으로 간주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는 사상적 기제가 어떻게 대규모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자본주의 대중문화 시스템에서, 주체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품과 이미지에 매몰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근대 이성이 만들어 낸 ‘산업화·표준화’ 논리가, 주체의 자율성마저 위협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주체 중심주의는 근대 철학의 기초로 자리 잡아 “인간 이성이 곧 진보와 해방의 열쇠”라는 인식을 널리 퍼뜨렸지만, 20세기의 잔혹한 전쟁과 인종 학살을 통해 그 환상이 깨졌습니다. 아도르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계몽된 이성은 왜 스스로 야만으로 치닫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주체 중심주의 비판은 단순히 “근대가 틀렸다”고 선언하기보다는, 근대 철학이 일방적으로 신뢰해 온 이성과 주체 개념을 재검토하자는 요구에 가깝습니다.

아도르노는 어떠한 단일 진리나 체계에 통합되지 않고, 끊임없이 부정하고 비판함으로써 자기 파괴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대적 주체 개념이 강조했던 자율성과 합리성은 여전히 의미 있지만, 그것이 자연과 타인에 대한 배려, 연대, 비판적 성찰을 동반하지 않으면 또다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체 중심주의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이성적 판단을 통해 역사와 자연을 개척해 왔으나, 이 과정에서 드러난 폭력성과 자기파괴적 결과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해방된 인간 주체”가 되고 싶다면, 먼저 근대 철학의 토대인 주체 중심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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