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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이유

by 프라임 핏

글쓰기란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개인의 생각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여기서는 글쓰기로 정의하지 않겠다. 글쓰기는 크게 세 목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창작, 소통, 탐구이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은 창작을 목적으로 한다. 이메일이나 편지 등의 생활 작문은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논문이나 에세이는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이다. 이 글은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다. 지금부터 글쓰기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탐구하겠다.


첫째로 생각은 주관적이지만, 글은 객관성을 가진다. 주관적인 생각이 글로 표현될 때 그것에 객관성이 부여된다. 생각은 볼 수 없지만, 글은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글쓰기의 객관성은 말하기와 비교될 때 더 명확히 드러난다. 말하기의 경우 화자와 청자가 명백히 구분된다. 반면 글쓰기에서는 작가이자 독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글은 누가 썼는지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것은 평가 가능하며, 수정 가능하다. 객관적인 글을 보며 내가 틀린 것,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자기개선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생각이나 말하기 같은 주관적인 것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유한 강점이다.


둘째로 글은 영속성을 갖는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칼로 남긴 것은 사라지지만, 펜으로 남긴 것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글쓰기를 위한 에세이에서 "로마는 사라졌지만, 유대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라며 글의 영속성을 찬양한다. 생각은 휘발된다. 글로 남겨놓지 않은 생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영속성을 부여하지 않은 탐구는 전력질주를 무수히 하는 것과 같다. 처음 자리로 돌아가며 지칠 때까지 달리는 것이다. 훈련을 거듭하며 점점 빨라지고, 멀리 가겠지만 결국 처음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반면 영속성을 부여한 것은 도착점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끝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발전한다.


이 글은 1년 전에 쓴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1년이 지나 기억에서 휘발되었지만, 남겨진 기록이 다시금 나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다. 객관성과 영속성은 글쓰기에 절대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개선될 수 있으며, 그 기록은 증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보다 더 많은 양의 글을 남길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결과 글쓰기를 통해 정리한 지식은 더 넓고, 더 깊다. 한 줄의 문장은 사라질 생각을 영원히 살아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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