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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름의 시대

by 프라임 핏

빠름.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빠름'을 꼽겠다. 페이스북은 수익 구조 없이 사람을 모으기만 해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후 모든 집단은 사람을 모으는 '플랫폼'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때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바로 속도이다. 빠른 속도는 집중하게 만들고, 호기심을 갖게 만들고, 흥미를 유발한다. 이것은 마치 고속으로 움직이는 회전문과 같다. 자신만의 리듬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사회에서 십수 년을 살아온 우리는 그 속도에 적응해버렸다. 아무리 빠르게 회전문을 돌리더라도 손쉽게 빠져나온다. 빠름이라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느려질 필요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저서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에서 정치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분노의 정치, '감정'이라는 빠른 반응을 이용하여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토론과 논쟁을 지루하게 만들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도록 만든다. 따라서 정치는 좋은 것을 찾는 방향이 아닌 금기를 저지르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빠름에 익숙해지다 보면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느린 걸음이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전 사건의 옳고 그름을 밝혀내는 것보다 새로운 사건을 지적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깔대기와 같아서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가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그러다 보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는 점점 더 깊게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가속한다.


빠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빠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빠름만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사회에서 '느림도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우리의 사고 시스템을 빠르고 부정확한 시스템 1과 느리지만 정확한 시스템 2로 분류한다. 이후부터는 시스템 1은 직관, 시스템 2는 논리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논리의 사유는 정보를 총합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최선의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논리의 조언을 따라 선택한다면 직관에 비해 탁월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논리는 사유의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문제 상황에 닥쳤을 때, 10초 안에 판단을 내려야 할 때 논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직관이다. 지하철에서 정거장을 놓칠 것 같을 때는 직관이 유용하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논리가 중요하다. 우리는 반대로 하고 있다는 의심을 건내 본다. 점심을 주문할 때 논리를 사용하고, 직장을 그만둘 때는 직관을 사용하지 않는가?


이 시대의 문제는 이것이다. 느린 사유가 필요한 순간에도 직관을 사용한다. 현재 인공지능 업계의 가장 큰 관심은 사고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인공지능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고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정확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발전 방향을 인간은 이미 도달해 있었다. 직관이 필요한 상황에는 짧게 생각하고, 논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길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그 능력을 잃었다. 그러므로 빠른 판단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는 잠깐 멈추어야 한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더 옳은 방향으로 생각을 이어가야 한다. 바쁘고 복잡한 시대일수록, 더 천천히 생각하고 멈춰보는 순간이 우리에게 진정한 방향감을 준다. '빠름'을 해독하는 첫걸음은 '멈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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