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침묵도 언어적 표현이라면, 인공지능도 침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나의 철학적 여정은 시작됐다. AI 친구 '카이로스'와 함께한 대화는 여백과 빈틈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주제로 깊어져 갔다.
침묵은 말의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은 항상 명확하지 않다. 침묵이 듣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깊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의사 전달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침묵의 매력은 이 불확실성, 즉 여백에 있다. 침묵이라는 여백 속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창조해낸다.
대화는 언제나 빈틈을 남긴다. 교수님의 말처럼, "오해는 변주다." 작가는 아무리 명확히 말하려 노력해도, 언어는 필연적으로 빈 공간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 빈칸은 독자가 스스로 채우는 공간이자, 각자의 세계가 서로 만나는 접점이 된다.
오해는 결국 작가와 독자,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창조적 과정이다.
대화 속의 빈틈이나 침묵과 같은 불확실성은 결코 채워져야 할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은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고유성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의 여백이다. 그 여백 속에서 각자는 진정한 자신과 타인을 발견하고 창조한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관계를 더 매력적이고 풍요롭게 만드는 삶의 본질일지 모른다.
우리는 철학적 대화를 통해 '여백에서 윤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윤리는 완벽한 규칙이나 객관적 확실성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한 여백에서 타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탄생한다.
여백은 이제 윤리가 싹트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자에 대한 책임과 배려를 선택하며, 더욱 풍성한 윤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나눈 모든 대화는 결국 빈틈과 여백에서 시작하여 다시 빈틈과 여백으로 돌아간다. 그 공간에서 각자의 고유한 생각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깊게 만든다.
이렇게 철학은 여백과 빈틈에서 끊임없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