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해리포터'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신비한 마법의 세계.
북적이는 호그와트와 화려한 연회장.
용기 있고 멋진 해리포터, 멍청한 론과 똑똑한 헤르미온느. 그리고 늘 거슬리는 못된 말포이까지.
어느덧 스무 해가 지나고 다시 마주한 해리포터는
내게 더 깊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선택, 용기, 사랑과 우정.'
사랑과 우정이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척박한 대지 위의 외로움과 망망대해 같은 상실감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더 내딛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귀를 기울이게 된
이야기는 다름 아닌 '말포이'의 이야기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해리포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해리의 여정에 함께하다 보면 그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책임감을 내려놓고 마음 놓고 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교차할 정도로 그의 운명은 더없이 가혹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해리는 단 한순간도 책임감을 내려놓지 않는다.
처절할 정도로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원망할 법도 하지만, 가슴을 찢어놓을 듯한 배신감에 몸부림을 치고 복수를 다짐할 법도 하지만, 그는 끝까지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까지 하고 가시덤불 밭을 맨발로 묵묵히 걸어간다. 그래서인지 그의 행보는 어딘지 모르게 예수의 행보를 닮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해리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해리의 재능과 용기, 헤르미온느의 지혜, 론의 우직함이 한 자리에 없었더라면 마법사들이 쌓아 올린 세상의 결말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중심에는 늘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리를 막지 않고 갑작스레 자신에게 떠 안겨진 버거운 운명을 홀로 견디며 조용히 눈을 감고 도왔던 말포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말포이를 용감하지 못한 존재,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용감무쌍한 해리보다 두려움 많고 운명을 버거워하는 말포이에 가깝지 않은가.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의 모든 말포이들은 어떻게든 행복할 자격이 있다.
자신의 피를 흘려가며 목숨까지 바쳐 남을 돕는 해리가 있는 반면,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도움 아닌 도움을 주는 말포이가 있는 것처럼 세상의 존재들은 다양하다.
피를 흘리며 나설 용기는 없지만, 악함을 추구하지는 않으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 자격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삶들은 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끝내 우리의 이야기로 끝나게 된다. 거대한 운명 속에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그때마다 기억해내야 할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바로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속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말해주었던 이 문장일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선택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