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돕기 Jul 09. 2016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답니다.

눈살 찌푸려지는 [의도의 어긋남].

의도 : [명사]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 또는 무엇을 하려고 꾀함. ‘본뜻’으로 순화. [국어사전]


우리는 각자의 의도를 갖고 산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의도를 품은 행위와 의도적이지 않은 행위로 구분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의도적이지 않은 행동도 다른 이의 '오해'에 기인한 재해석으로, 결국 서로 다른 '의도'에 의한 [의도적이지 않은] 행위로의 전환이다.


의도는 의중, 의미, 계획 이라는 단어들과 등가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의도를 갖고 있다. 특정 행위마다 고유한 의도성을 내포하여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자 한다. 때로는 의도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소한 일들도 사실은 의도성을 갖는다. 어머니의 아침밥상도, 아버지의 아침출근도 모두 의도를 갖는다. 만남, 소통, 교육, 생산, 소비, 노동, 놀이 모든 것이 그렇다.


모든 행위에 의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다음으로는 '의도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를 꼽을 수 있지만, 선-악의 기준을 분류하기엔 또 다른 범주의 글이 될 것 같아 삼가도록 한다. 다만 이런 생각은 가능하겠다. 개인의 사소한 행위에 초점을 둔 의도가 아니라, '행위 범주'에 알맞은 의도성을 갖는다면 선한의도로, 다른 목적을 갖는다면 악한의도로 분류하는 법이다.교육이라면 가르치고, 배움 받는 기능에 충실한 의도가 선한 의도가 되며, 이 외에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다른 사적인 의도를 갖는 것을 악한 의도로 보는 것이다.


여러 직업과 관련하여 본래 직업에서 요구하는 의도와 근로자 개인의 의도가 잘 부합되지 않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가치적인 혼란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의 상업화, 부실공사,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 기업가들의 비리 등이 그렇다. 엄밀하게 다양한 사례들을 분석해본다면, 최근의 이러한 '의도의 어긋남'은 자본 즉, 돈과 유독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의술이 다른 목적으로 성형외과를 가장 부흥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웃음과 삶의 의미를 투영시키고자 하는 배우, 가수 등은 그저 아름답고 잘 생긴 사람들을 찾는 데 급급하게 만들었다. 교육자들과 학부모 간의 다툼, 거래 등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직업이 갖는 의도와 한 사람이 갖는 의도는 서로 다르게 존재한다. 동일하기도, 상이하기도 한다. 교육의 의도가 삶의 지혜와 다양한 지식의 전승이라면 한 개인은 그 의도에 맞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으며, 의도에 맞지 않게 교육 행위에 소홀할 수도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교육자라는 직업을 단지 걸쳐가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교육자로서의 삶이 최종적인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개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와는 별개로 교육 행위에 선한 의도 혹은 악한 의도가 표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택시운전이라는 직업이 한 개인에게 최종적인 목표라 하여도 이 일을 성취한 보람과, 그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일은 조금 다르다.


개인의 '의도'는 단순한 '직업 의도'와는 별개로 다층적이다. 오히려 개인의 성향과 더 밀접하지 않은가? 라는 고민도 안겨준다. 순종과 불순종이라고 표현한다면 사람들을 너무 피동적인 존재로 여기는 느낌을 주겠지만.. 직업의도와 개인의 의도를 맞출 줄 아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구조대원으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사람이 자아내는 숭고한 멋이 그러하다. 스승으로서 삶의 지혜와 자기 분야의 지식을 한결같이 많은 제자들에게 전승하는 꾸준함이 그러하다. 요리사로 사람들에게 미식의 즐거움을 나누는 풍성함이 그러하다. 각각의 '직업의 의도'는 역사적으로 기능적 분화로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구성되어졌을텐데, 자본에 오염된 '개인의 의도'는 이 또한 오염시킨다.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 눈살이 찌푸려지는만큼, 나를 보는 다른 이들의 눈살은 또 얼마나 찌푸려지는 것일지 고민하게 된다.


자본이 무조건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의 유혹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험이다. 바다보다 넓다는 사람욕심은 순수한 의도를 깨트리지 않을까. 그에 앞서 나의 의도를 잘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누구를 위한 시간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