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을 시작하기까지
"취미가 뭐예요?"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질문이다. 한 번쯤은 해봤을 질문이기도 하고. 나는 이 질문을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게 됐다. 이 질문이 무심코 압박감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생각하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정답인지 고민하게 된다. 답이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어떤 대답이 저 사람을 만족시킬까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의 의도를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비슷한 취미를 찾아서 친밀감을 형성해보자.]라는 것일 확률이 높은데 그렇다면 우선 우리는 질문자의 취미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딱히 의도 없이 그저 궁금함으로 질문한 것이라면 이 포괄적으로 엮을 수 있는 취미란 어디까지를 보는 건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가끔은 산책도 하고, 가끔은 헬스를 하기도 하며, 가끔은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무엇하나 취미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이 애매한 질문에 대해 당장 표면적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나는 독서라는 대답을 하곤 했다. 실제로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더 질문하기는 애매한 취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이 질문을 성공적으로 끝맺음했다고 의기양양하던 나에게 어퍼컷을 먹인 질문이 추가적으로 들어왔다.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네?"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면서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예상했을, 뻔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황을 했었는데,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본 적이 언제인지... 그렇기에 언젠가 읽었었던 책 제목을 말하여 가까스로 상황을 모면하기는 했으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속인 느낌. 거짓말하는 느낌. 이 느낌이 들고나면 그 사람과는 관계를 정직하게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진짜 독서를 취미로 가지게 된 지금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말하게 된다.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알게 해 준다.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는 일과 의미를 찾는 일도, 에세이를 보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는 것도, 환경이나 동물권, 장애인권 등에 대해 내가 알지 못했던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도, 자기 개발서를 통해 나 자신의 성장을 독려하는 것도 너무 좋다.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거나 대답하기 부담스러워하던 내가 방구석에서 세상의 부분을 관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숨이 벅차게 자랑스럽다. 지적 허영은 아닐까 걱정되지만 지적 허영이면 어떤가.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아가고 내 세상이 넓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독서라는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책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어서, 그 책이 없는 세계와 그 책이 있는 세계를 비교해 봤을 때 후자가 더 나은 세계임을 확신하게 될 때가 있다.
<독서의 기쁨>, 김겨울
독서를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27살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에 서울로 취업을 하며 올라오게 되었다. 올라오면서 본가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또한 가지고 올라왔다. 당시에 꽤 핫했던 베스트셀러로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힌다고 극찬한 리뷰를 봤고 서울까지 왔는데 일하는 것 외의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란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녀오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가끔 책을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글자가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장을 보고 있는데 맥락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 지점에서 충격을 적잖이 받고 충동적으로 신청하게 된 것이 주말 아침 독서모임이다. 토요일, 일요일에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아침 8시에 시작하는 독서모임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주말 아침을 깨우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것도 잠시 아직은 20대니까 이정돈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첫 모임에 나갔다. 별건 없었다. 모임장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밖엔. 토요일은 보통 수요가 많았기에 첫 모임에선 5-6명 정도가 나와 함께했다. 주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은근히 흐르는 기류에 분위기를 맡겨 책 읽는 시간도 가지고, 읽은 것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기도 하며 의미 있는 모임을 가졌다. 평소에는 책을 한 장도 읽기 어렵던 내가 함께 읽으니 꽤 많은 진도를 나가게 되었으며 읽은 것을 함께 공유하며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소화했다.
주말에 딱히 할 것이 없었던 때라 8시부터 한 시간 정도를 읽고 말하기 시작하는데 책 내용에 일상 얘기를 더해 거의 항상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재밌는 사실은 계속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무래도 아침 8시는 꽤나 힘든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매주 새로운 사람을 보게 되었고 굉장히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했을 무렵, 나오진 않지만 매주 모임을 열어주는 모임장이 모임을 나가버렸다. 이제 모임을 열어 줄 사람은 없는 상황. 자연스럽게 모임은 해체되고 말았다. 삶에서 거의 유일하게 있던 자기 계발활동이 사라졌다.
그렇게 다시 나는 한량으로 돌아갔다.
시간은 어느덧 반년 가량 지나고 코로나가 시작된 어느 날. 우연히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분과 인스타 디엠으로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서로가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인스타를 교환한 다른 분에게도 디엠을 보내어 함께 독서모임을 열지 않겠냐고 권유를 드리게 됐다. 모임은 토요일 아침 9시. 전에 8시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해서 출근시간과 맞추게 됐다. 그리고 아무래도 고정 멤버로 진행하는 모임이다 보니 한 주에 한 번으로 정하게 되었다.
고정멤버로 진행을 하니 전 모임보다는 편하게 진행했다. 또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보니 책 얘기를 재밌어했고 계속 적당한 거리에서 좋은 관계로 진행돼서 재밌었다. 그렇게 2달 정도를 하고 의견을 나눠보니 이전처럼 새로운 사람들과 모임을 하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하셔서 함께 모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모든 모임이 특별하진 않아도 모임 속에 어떤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독서모임, 오도독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총 200명 안팎의 회원이 참여했었으며 2021년 4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정규 모임만 400번 정도의 모임이 열렸다. 현재도 카톡방에선 150명 안팎의 회원이 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만큼의 규모를 가진 모임으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부족한 모임장으로 많은 부분에 부딪혔고 실수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가 했던 문제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독서를 시작하기 망설이는 마음이 조금은 변하기 원한다. 어쩌면 당신은 독서모임을 시작하려 할 수도 있고, 독서모임에 들어가려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독서를 시작하려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뭐가됐든 원하는 한 가지는 내 글을 통해 그저 독서라는 작은 부분이 당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