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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심슨 Dec 25. 2019

‘시’를 써보자

시집살이 개집살이 1

“오빠 나 우리 얘기를 써보고 싶어.”


“우리 얘기? 너랑 나?”


“아니, 우리 가족. 오빠랑 나. 그리고 어머님. 이렇게 셋이 사는 얘기를 써보고 싶어.”


“그래. 그럼 써.”


“그래도 돼?”


평일 오후 세 시의 교보문고는 주말 때보다 훨씬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책을 고르는 여유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날은 출산한 지 134일 차. 아기가 태어난지도 134일 차였다. 그러니까 내가 서점에 안 간지도 134일 정도 됐을 때였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슬슬 걸으며 서점 구경을 했다. 스테디셀러들은 여전히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참신한 베스트셀러들이 매대를 꼼꼼히 차지하고 있었으며 새로 나온 재미있는 책들은 얼마나 많은지... 다 읽고 싶은 마음에  속이 간질간질했지만 서점의 정취를 오랜만에 느끼다 보니 불현듯 내 이야기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거렸다. (아마 요리책 옆에 있던 글쓰기 책이 이 마음을 더 부추겼던 것 같다.)


그런데 뭘 쓰지? 글은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럼 내가 그렇게 쓸 수 있는 장르는 어떤 게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문득 내가 시집살이 중인 게 떠올랐다. 이 소재라면 내가 매일매일 말해도 지치지 않고, 팔만대장경으로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싶었다. 주제가 정해지자마자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남편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아마 엄마는 돈만 많이 번다고 하면 자기를 다 팔아서 쓰라고 할걸.”


이 한마디에 어머님이 뒤에서  나 언제부터 일 나가냐고 추긍했을지가 느껴졌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내가 봐온 어머님 성격상 그랬다. 아기 키우느라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아들 혼자 돈 버는 게 안쓰러우셨겠지. 그리고 그걸 옆에서 매일 보시니... 그런데 내가 매일 육아와 집안일에 씨름하는 모습은 안보이셨나 보다. 어쨌든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니까. 어머님 기준에서 나는 고생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가슴이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나온 서점인데 이런 기분으로 돌아다니긴 싫었다. 돈 벌 일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풀 수 있다면 족하다. 쓰자! 신랑도 시어머니도 동의(?)했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글을 쓰고 싶었다. 모처럼 얼른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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