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개집살이 22
시어머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나에게는 안좋은 습관이 있는데...그건 바로 옷을 쌓아두는 습관이다.
나름 정리해서 놓는다고 해도 어느새인가 옷방 한켠에 옷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다.
사춘기시절, 꾸미기 시작한 무렵부터 옷을 대충 쌓아두었으니 이젠 고칠수 없는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저같은 분들이 꽤 계시리라 믿습니다.)
시집와서도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나도 모르게 아가씨때 습관이 나와서 옷방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옷산(?)에서 발굴한다는 느낌으로 그 날 입을 옷만 사삭-사삭 얌체 같이 빼 입었다.
옷방은 나와 신랑이 출근하고 퇴근할때만 왔다갔다 하는 곳임으로 시어머니는 크게 신경 쓰려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은 옷산을 참을수 없으셨는지 퇴근해서 와보니 옷산이 눈사람 녹듯 사라져 있었다.
옷산은 자잘한게 분해되어 세탁기로 들어가 있거나 옷걸이에 걸려 있거나 서랍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옷방은 한결 넓어졌다. 그런데 나는 기분이 나빴다.
옷산은 후질근하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내 나름의 혼돈 속의 질서(?)가 있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나보고 안입는 옷들은 버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버리지 않았다. 그것들 중 버릴것은 한 개도 없었다.
설사 버려야 할것이 있더라도 나는 오기로 안버렸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건들인 건 지저분한 옷산이 아니라 내 프라이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옷가지들을 정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대신
“아유...그냥 두시지...”하고 말끝을 흐렸다.
난 그 뒤로도 몇 번 옷 산을 만들었다. 시어머니가 매번 그 옷들을 정리하신건 아니지만 이번처럼 참다못해 몇번씩 옷산을 분해하시곤 했다.
어른이랑 사는 이상 이왕 정리 좀 하고 살면 좋을것을...나도 무슨 고집인지 내 나쁜 습관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런것까지 일일이 신경쓰고 어떻게 사냐고 생활로 항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날은 시어머니가 길다란 행거를 사오셨다. 앞으로 자주 입는 옷들은 여기에 걸어 놓고 입으라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그 행거는 옷 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하루는 옷들을 죄다 서랍에 넣어 놓으시고는 서랍장마다 ‘리사 세타, 니트’ ‘리사 겨울 치마’ ‘리사 여름 원피스’라고 종류별로 적어서 붙여 놓으셨다.
서랍장의 옷들은 금세 나와 다시 옷산을 이루었다.
아직도 나는 이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아니 고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도 분기별로 내 옷산 해체 작업하는 걸 멈추지 않으신다.
이제 옷 정리는 시어머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의 형태로 변질되어 버렸다. 조만간 시어머니는 또 내 옷산을 해체하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