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개집살이 11
이사 준비를 하면서 신랑은 안방을 우리가 쓰자고 했다. 나야 좋지만...어머님이 과연 안방을 내어주실까?
소심한 나는 어른을 제치고 안방을 쓸 엄두가 안났다. 그냥 안방은 어머님 쓰시라하자...했는데 신랑이 완강했다.
나중에 애기도 낳고 하면 비교적 넓은 방과 화장실이 필요할것이라 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삿날이 되었다. 어머님은 그날따라 이모님을 데리고 오셨다. 이삿짐들이 오고가는 정신없는 틈에 어머님은 제일 먼저 안방으로 가시더니
자신의 침대와 장롱등의 배치를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에게 지시했다. 안방을 우리가 쓰겠다고 말할 틈도 없었다.
사실 이건 우리도 잘못한게, 이삿짐이 들어가기전 어머님과 합의를 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합의도 없이 이삿날 결정하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무모한가.
신랑은 시어머니를 막지도 못했다. 몇 번 시도를 하려는것 같긴했는데 이모님과 어머님이 꺅꺅거리느라 끼어들지도 못했다. 우리 부부는 멍청했다.
게다가 이모님은 어머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안방은 당연히 시어머니가 써야지가 박혀 계셨고, 집안 어른을 앞에 두고 안방은 저희가 쓰겠어요! 하고 면박줄 배짱이 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님이 흔쾌히 양보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주방이었다. 주방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냉장고의 위치를 두고 어머님은 왠일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이런건 주방을 가장 많이 쓸 사람이 정해야지.”
라는 말씀과 함께. 그 말은 앞으로 내가 집에서 밥을 많이 하게 될 것이란 걸 암시하는 것인가?
방은 총 세 개였다. 안방 하나, 작은방 두개. 작은 방 중 하나는 안방 바로 옆에 있었고, 하나는 현관문 바로 앞에 있는 방이었다.
어머님은 둘 중 어느 방을 쓸꺼냐고 물었다. 난 당연히 안방과 떨어져 있는. 현관문 바로 앞 방을 선택했다.
나름 혼수로 산 신혼 가구가 들어오기 전이라 방은 휑했다. 도배를 새로 하기 전이었는데. 내가 선택한 방이 겨울왕국 분홍 벽지의 방이었다.
어머님은 뒤로 따라 들어오면서 중얼거리셨다.
“가구로 잘 가리면...안보일텐데...”
그 말에 신랑은 아무리 그래도 이런 벽지를 어떻게 신혼방 벽지로 쓰냐고 핀잔 주었다. 그러자 어머님은 말했다.
“이 분홍이 촌스런 분홍이 아니라. 세련된 분홍이야.”
그렇게 분홍방이 좋으시면 양보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신혼방 벽지로 유행하는 그레이 색을 골랐다. 나쁘지 않았다. 벽지 하나만 바꿨는데도 방이 꽤 모던해지고 세련된 느낌이 되었다. 세련된 색은 바로 이런 색이에요라고 응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나와 신랑, 딸은 한때는 세련된 분홍방이었던 그 곳에서 잠을 잔다. 언젠가 나도 안방에서 잠을 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