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개집살이 53
내 동생은 정이 많은 편이다. 아기도 좋아한다. 겉으로는 무뚝뚝해보여도 아기가 있으면 무장해제가 되서 아르르~까꿍을 하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동생에게 첫조카는 꽤 의미 있었다.
동생은 유리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보다도 먼저 병원에 와서 병문안을 했고, 유리에게 필요한것중 비싼거 하나쯤은 자기가 사주겠다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사회초년생이었던 동생에게 고맙다고 덥석 받기도 뭐해서 나는 몇 번이나 됐다고 거절했다. 그럼에도 동생은 출산 선물을 꼭 해주겠다며 별렀다. 완강한 동생 고집에 결국 나도 지는셈치고 출산 선물을 받기로 했다. 내가 고른건 범퍼 침대였다.
그때만해도 아기가 아직은 어려서 아기 침대에서 잤지만 뒤집기를 시작하면 아기 침대를 더 못쓴다는 말에 범퍼 침대를 들여야겠다고 생각해왔었다. 동생은 내 말에 흔쾌히 범퍼 침대를 사줬다. 그것도 제일 큰 사이즈로.
범퍼 침대가 우리 집에 도착하던 날.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동생도 내가 사는 동네 근처로 미팅을 나왔다고 했다. 그냥 가도 될것을 동생은 온김에 나와 조카를 보고 가겠다며 우리 집에 들렀다. 다행히 그때 시어머니도 안계시던 터라 서로가 불편한 상황은 없을것 같았다.
동생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유리를 보고 예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제법 안정적인 폼으로 아기를 안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한참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도어락 버튼이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의 귀가가 평소보다 빨랐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동생이 수줍게 인사했다. 시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사돈총각의 방문에 조금 놀라신듯 보였지만 최대한 반갑게 말씀하셨다.
"어? 아이고~ 사돈 총각 왔어요. 어서 와요. 누나랑 조카 궁금해서 왔구나~"
"동생이 오늘 이 근처에서 미팅을 했다고 해서요. 가기전에 저희 보려고 잠깐 들렀데요."
딱히 죄 지은것도 아니건만 그때 나는 내 맘대로 동생을 불렀다는 것에 이상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집살이에 너무 길들여진 것인지도 몰랐다. 동생도 괜히 내가 난처할까 싶었는지 시어머니가 오시자마자 이제 자기도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아니 왜~ 더 있다가지않구. 누나랑 얘기도 좀 더 하고"
"아, 아니에요 퇴근 시간 걸리면 차 막히니까 지금 가는게 나을것 같아요."
"아유, 그래요. 그럼 조심히 가요."
그렇게 동생이 막 나가려는데 동생이 현관 중문에 쌓여있는 범퍼 침대 택배를 보고 말했다.
"어우..근데 이거 부피가 꽤 크네. 이거 내가 조립해주고 갈까?"
"됐어, 뭘 조립해. 이따가 매형 오면 같이 할꺼야."
"에이 매형 퇴근하고 와서 하려면 피곤할꺼 아냐."
이 말에 시어머니는 뭔가가 번득이셨는지 말씀하셨다.
"그래요~ 시간 괜찮으면 조립 좀 해주고 가요. 아범은 와서 또 애 목욕시키고 하면 쉴 시간이 없어요"
흐미...이 무슨....가려다가 범퍼 침대 조립해주겠다고 하는 동생이나....그걸 듣고 단번에 그러라고 하는 시어머니나....나는 불편한 상황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바보같이 착한 동생은 시어머니의 말대로 그 날 범퍼 침대를 전부 조립해주고 갔다. 내 동생이건만...동생 찬스는 시어머니가 쓰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