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장래희망이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대통령이든, 우주비행사든.
그 어떤 제한 없이 꿈꾸는 대로 꿈이 되었다.
10대의 꿈은 대학이었다.
좋은 대학이 인생을 바꾼다 여겼다.
실패한 인생과 성공한 인생은
수능 하나로 나뉘었고,
나는 한동안 실패감에 허우적댔다.
20대의 꿈은 직업이고 결혼이었다.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
반려자를 만나 안정된 울타리를 만드는 것.
내가 가진 한계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젊음에 생채기가 나던 시절,
나의 꿈은 안정이었다.
30대의 꿈은 그저 아이들이었다.
배가 불러올 땐 그저 건강한 아기가 꿈이었고,
아이가 태어나니 아이가 내 꿈이 되었다.
그래서 꿈을 꿀 필요가 없었는지도.
이제 40대의 꿈, 더 나아가 앞으로의 꿈은
어떻게 꿔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식이 내 꿈이에요.'
라고 하고 싶진 않다.
(아이의 인생이 곧 내 인생이 되는
부모가 되기 싫다는 말이다.)
꿈이라는 이 반짝이는 단어를 내가 가져도 되나.
왜 나는 이 단어 앞에서 위축될까.
언제부터 꿈을 담는 그릇이 작아졌나.
꿈이 클수록 느꼈던 한계들이 쌓여서
스스로 그릇을 줄였을까.
그릇을 줄여 나를 보호했을까.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내 그릇에 무엇을 담을까.
꿈이라는 단어에 어울릴만한 원대함은 없는데.
가슴에 웅장함이 없는데.
뭘 꼭 담아야 할까.
지금 내가 바라는 건
그저 고요한 아침과
무탈함과
책과 이야기 속의 다른 이의 꿈을 바라보는 것.
그게 다인데.
언젠가는 나도 다시 꿈 꿀 수 있을까?
혹 꿈이 있는데 꺼내기 싫은 걸까,
'그저 그런' 꿈이 창피한 걸까.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잠시 내 인생에서 잊혔던 이 단어를
다시 품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