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쏘아져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한강 소설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시간'을 묘사한 문구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너무도 기가 막히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하며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올해도 벌써 9월의 문턱을 넘었으니, 조용하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마저 느낀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공평의 시늉조차 없이' 우리에게 일회용 삶이 주어졌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 다만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이 유일한 자원을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시간을 지배하는 삶이든, 시간에 지배받는 삶이든- 우리는 모두 그 가혹한 흐름 속에 살아간다.
시간은 나를 매일같이 움직이게 한다.
출근 시간, 하원 시간, 저녁 시간, 약속 시간은
순식간에 다가오고,
점심시간, 쉬는 시간, 혼자만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하루 중 이렇게 시간이 주는 압박에 움직이고 쫓기며 아등바등 살아간다.
하지만 늘 그렇게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니다.
아침잠을 이겨내고 아직 해가 뜨지 않는 새벽에 일어나 시간을 더 벌어보겠다는 노력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때론 책이 주는 즐거움을,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들을 음미하며 그 시간을 붙잡으려 글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을 주도적으로 살아보려 애쓰는 순간들이 늘어났고,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삶의 여유도 생겼다.
돌이켜보면 어릴 땐 그토록 시간을 우습게 흘려보냈다. 그저 무한할 것 같은 시간이었고 언제든 '내일'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태평하고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도 나이가 들고, 가족 중 누군가의 예상치 못했던 죽음을 목도하며 삶의 유한함을 온몸으로 느낀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이 사실은 현재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미래보단 현재를 끌어안으며 살게 되었다.
결국 내 삶을 움직이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에 쫓기기도, 때로는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사실 두 아이의 엄마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은 대체로 시간에 쫓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 중 얼마간의 순간만큼은 나의 의지를 다해 아름다운 것으로 꾹꾹 채운다.
책 안의 온갖 이야기들,
매일 한 편의 시,
출퇴근길의 하늘과 구름,
저녁시간 가족과 함께 바라보는 노을,
아이들과 끌어안는 시간 같은 것들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 이러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고, 느끼고, 기록하는 것은 내가 현재를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근사한 것 하나는 품고 있어야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얼마 전 읽은 『오뒷세이아』에서 이준석 번역가님의 말이다. 아름답고 근사한 것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일상 구석구석에, 살아가는 곳곳에 존재한다. 오늘도 그 눈부신 것들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 시간을 채우며 매일을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