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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Jul 14. 2021

우유 아줌마 이야기 1

새벽을 달리던 티케

'탁탁탁... 헉헉~'

5층 빌라 4층이다.

새벽 5시 20분 마지막 집 우유주머니에 200ml 2개를 넣고 돌아서면 옷은 소낙비 맞은 것처럼 젖어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은 시원했다. 겨울엔 이동할 때는 찬바람이 문제긴 했지만 배달을 하느라 뛰어다니면 땀이 났다. 배달이 끝난 뒤엔 기분 좋은 성취감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모두들 잠든 시간이라 살금살금 식구들 깰까 까치발로 들어가 씻고 잠시 눈을 붙였다. 짧은 꿀잠이었다.


우유 아줌마

5년을 우유 아줌마로 살았다. 애들 과자값이나 벌어볼까 하고 시작한 우유배달... 처음엔 바구니에 담아 집 근처를 걸어 다녔다. 그러다 조금씩 늘어난 고객 덕분에 자전거를 이용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지금도 자전거는 못 탄다. 들고 다니는 것보다 자전거 앞과 뒤에 싣고 다니면 무겁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두 달을 배달해보니 끌고 다니는 자전거 무게가 더 벅찼다. 오르막엔 자전거를 끌고 가기 힘들어 바구니에 나눠 담아 뛰어다녔다. 시간이 배로 걸렸다. 한 달 수입이 30여만 원으로 시작해 80여만 원이 되었다. 이젠 조금 욕심을 부려 노란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 노란 오토바이를 탔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오르막도 타고 갈 수 있고 무엇보다 배달 시간이 단축되니 새벽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졌다, 조금 더 잘 수 있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계단을 뛰어다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할 때 그 시원함이란... 그 바람이 참 좋았다.

고마운 고객 & 짠한 고객

지금은 모든 계산서가 온라인화 되었지만 1993년 당시에는 직접 월말 수금이었다. 지로용지를 원하는 고객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텐데  사람 마음 헤아려 주는 분은 꼭 있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를 겨울에는 따뜻한 장갑을 건네주는 고마운 고객들... 아직 그 따뜻함은 잊지 못한다. 내가 아직 택배 아저씨나 미화원 아저씨들 양말 걱정을 하는 건 나눔을 받아봐서 그렇다고 생각해본다. 어느 날 우유대금 두 달분을 받지 못한 집으로 어둑어둑해져서 방문했다. 이미 두 번이나 방문 날짜를 연기했던 집이고 그날 방문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주택이라 문밖에서 불렀다.

"고객님 우유 아줌마예요~."

"......"

부르기를 세 번 옆집에서 문을 빼꼼 열고

"아줌마 그 집 어제 이사 갔어요 우윳값 안 받았어요?"

"네 오늘 받기로 했는데... 이사 어디로 갔는지 모르세요? 날짜를 몇 번 연기하더니 그냥 갔나 보네요..."

"급히 이사 가는 것 같던데 이사 가는 거 몰랐어요? 쯧쯧쯧..."

혀를 차며 대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문소리가 내 마음 같았다. 한 달 우윳값이 2만 원이 조금 넘었 으니 세 달치 6만여 원을 꿀꺽하신 거였다. 차라리 어렵다고 말을 하지... 돌아오는 내내 허탈하고 우울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직 그 집 골목이 눈에 선하다. 얼마 전 모 가수가 우유배달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응원과 짠함이 교차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으니까...


엄마로 아줌마로 살기 힘든  때였지만 열심히 달리며 살았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그 시간을 지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나는 지금의 를 사랑한다.

티케로 살고 있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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