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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Jul 20. 2021

우유 아줌마 이야기 2

처음 우유 배달하던 날

처음 우유 배달하던 날

슈퍼에서 사 먹기만 하던 우유를. 집에서 배달시켜먹던 우유를 직접 배달하려니... 어색하기도 했고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첫 배달을 나갔다. 새벽 3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대문 밖에는 우유 박스 3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이라 시간 개념도 없었다. 배달할 집을 전날 2번씩 미리 돌아봤지만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배달이 돼야 하니까 일찍 서둘러 나갔다. 거기다 걸어서 다녀야 하니 맘이 급했다. 우유 종류가 200ml, 500ml, 1000ml, 1800ml로 다양해서 정신 차리고 다녀야 했다. 잘못하면 우유가 바뀌어 배달사고가 날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배달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식구들 아침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여사님 우유가 바뀌었다는데 고객님과 얘기는  잘했으니 내일부터는 바로 넣어 주세요."

"네? 배달 잘했다고 걱정 안 하고 있었더니 결국 사고가 났네요 내일부터는 실수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첫 배달인데 한집만 연락 왔으니 잘하신 거예요

수고 많으셨어요 ~"

우유를 월, 목 또는 월, 수, 금 아니면 매일 먹는 집이 있었다. 주 1회 먹는 집도 있었으니 첫날이라 잘못 배달된 모양이었다. 토요일은 배달량이 2배다. 처음 토요일 배달하던 날은 집에서 먼 곳부터 배달했다. 바퀴 달린 시장바구니에 최대한 많이 담아 두 번으로 나눠 다니느라 곱절로 힘들었다. 하지만 일요일 쉰다는 생각에 신나게 뛰어다녔다. 새벽의 시장바구니 바퀴소리가 경쾌했다.

어설프게 시작한 우유배달을 5년간 하면서 별의별 일이 많았었다.


짖는 개는 족발뼈가 최고다

새벽 배달을 하며 낮에는 판촉을 하기도 했다. 고객을 늘려야 수입이 늘어나니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다. 대리점에서 판촉을 해주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소개도 해주니 배달 양이 점점 늘어갔다. 소개받은 집으로 처음 배달 가는 날 대문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큰 개가 동네 떠나갈 듯 짖었다. 다행히 목줄이 길지 않아 멈칫거리며 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겨우 우유를 현관 근처에 두고 돌아 나왔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날 저녁 족발을 시켜먹고 수북한 뼈를 보니 새벽의 싸나운 개 이빨이 생각났다. 비닐봉지에 족발뼈를 모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다음 날 그 집 앞에서 한 손에는 우유 한 손에는 족발뼈를 들고 당당히 들어갔다. 여전히 싸납게 이빨을 드러내며 짓어대는 개 앞에 족발뼈를 던졌다.

"엣다 이놈아 이거나 먹어라~!"

뼈를 고 후다닥 개집으로  들어가더니 부산스럽게 뼈를 뜯었다. 그날 후 나는 편안하게 배달을 할 수 있었다. 며칠을 족발뼈로 달래긴 했지만... 그리고 가끔 간식 선물을 주기도 했다. 내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던 그 녀석이 생각난다.

덕분에 새벽이 덜 무서웠다.


우중 배달

비가 오면 우유배달은 몇 배로 어렵다. 배달 도구가 진화하여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 한때부터는 더 힘들고 위험했다. 우의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야 하고 달리면 비가 얼굴을 쳐서 시야를 가린다. 길이 미끄러워 자칫하면 넘어질 수 있다. 여름 비는 견딜 만 하지만 한겨울 추위와 눈은 더 위험하다. 몇 해가 지나고 장마철이 되면 아예 우의를 입지 않고 우유만 덮어 그냥 다녔다. 배달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 상쾌했었던 기억이다. 지금도 가끔 비를 온몸으로 맞고 다니는 건 그때의 추억 때문인가? 별나긴 별난 우유 아줌마였나 보다.


마트에서 편의점에서 우유팩을 보며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나는 건 기억 속의 새벽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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