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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May 09. 2021

13살 아이의 뜨겁고 추웠던 이야기

불붙은 번개탄을 봐도 춥다

78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내 기억으로는 사는 동안 가장 추웠던 겨울이었다. 지금처럼 오리털 파커가 있지도 않았는데 그 겨울을 어찌 지냈는지 기억이 없다.


6학년 겨울방학 집 앞엔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을 가로지르는 용상 다리(건너편 동네 이름이 용상)를 건너 번개탄 공장이 있었다. 산처럼 쌓인 톱밥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불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온몸을 태운 톱밥을 기계로 압착해 구멍을 만들어 건조실에서 수분을 날린 후 작업실로 옮겨 비닐봉지에 담는다. 비닐봉지에 담아 양손으로 돌리면 비닐 귀가 생긴다. 10개를 쌓아 끈으로 묶으면 10원이다. 번개탄 1개 1원 하루 종일 500원어치 일을 하고 나면 눈동자 빼고 모두 까맣다. 눈곱도 까맣다. 까만 손으로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웃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까만 숯가루를 씻어야 했다. 다행히 뜨거운 물은 충분했다. 씻고 나오면 개 떨듯이 떨렸다. 다시 용상 다리를 건너오면서 꽁꽁 얼어버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 얼음이 후드득...
그  뜨겁고도 추운 일을 5일간 했다. 2500원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용상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을 보며
뛰어내려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응석을 받줄 엄마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친구들은 겨울방학이라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덮은 발을 까닥거리며 삶은 고구마를 먹고 있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강바람이 세찬 다리 위를 걷다가 나쁜 생각을 했었나 보다. 주머니에 꼭 쥔 돈을 손으로 조물 거리며 울어 버렸다.


할머니는 번개탄 공장에 가서 돈 벌어 오면 따뜻한 바지를 사준다고 했다. 바지는 끝내 입어 보지 못했다. 내 첫 번째 돈벌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며칠 전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한다 길래 기꺼이 달려갔다.

3.000장을 8가구에 배달했다. 적지 않은 연탄을 70여 명이 옮기니 오후 4시쯤 끝났다. 까만 장갑을 보니 어릴 적 번개탄을 만지던 내손. 까맣게 숯가루를 뒤집어쓴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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