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 생일이라 민망하게도 축하 톡이 요란스럽다. 심지어 낳아주신 엄마도 꽃 사진과 재미있는 사진으로 나를 웃게 만든다. 어릴 때는 생일을 모르고 지냈다. 누구도 기억 못 했고 나조차도 생일을 모르고 지냈으니... 친구들이 생일 선물 받아 자랑하고 집으로 데려가서 생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렇게 지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조금씩 생일을 알게 되었다. 생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게 정확하겠다. 나도 엄마가 돼보니 알았다. 열 달 품어 죽을 만큼의 산통을 겪고 난 후에 세상 빛을 보게 한 엄마의 위대함을 알았다. 살면서 조금 여유롭게 살 때는 그간 고생한 엄마와 여행도 가고 좋은 옷도 사드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늘 맘고생시킨 엄마의 아픈 손가락으로 살고 있다. 그런 딸이 쉰이 넘어 공부한다고 끼니 거르지 말라며 반찬을 보내주신다. 엄마는 오래전 반찬가게를 하셨다. 손맛이 좋아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단골이 되었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그때의 그 손맛이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 부모님께 달아드리라고 했을 때도 집에 가는 길에 꼬깃거려서 버린 적도 있었다. 누구에게 달아줘? 뭐라 표현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많이 했었던 시기였다. 누구나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하나씩 품고 살겠지만 나도 그렇다.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수없이 다짐을 해왔지만 살다 보니 엄마를 가장 많이 닮았다. 얼마 전 엄마가
"너는 다른 할머니들한"테는 잘하면서 엄마한테 왜 그러니?"라고 살짝 웃으며 물었지만 웃음이 쓰게 느껴졌다.
사실 엄마에게 살갑게 하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다는 걸 안다. 서운하고 속상하리란 것도 안다. 하지만 내속에 엄마를 완전히 안아주지 못하는 풀리지 않은 실타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그 물음에 퉁명스럽게
"엄마니까~"라고 말하고 말았다. 우린 다른 모녀들 보다 참 재미없는 사이이다. 가끔 주변에서 살가운 모녀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후회도 해보지만 엄마를 보면 늘 같은 투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조금씩 변해야 하고 달라지려 노력해야겠다. 말보다 슬쩍 필요한 것들 보내주고 챙겨 주는 게 내 표현방식이었다. 아마도 아버지 쪽을 더 많이 닮아서 그런가 보다. 좋은 건 안 닮고...
엄마
나도 힘들 때 엄마를 찾으며 많이 울고 지냈어요
힘든 거 내색 않으려고 더 크게 웃고 더 씩씩하게 다녔고누구보다 엄마를 많이 생각하고 아파했지만 표현을 못했을 뿐이었어요. 이젠 누구에게 얘기해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었으니 좀 더 따듯하게 다가갈게요. 살아내는 딸 지켜보느라 고생했어요. 많이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