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묘한 희열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처음 가보는 곳에 도착했을 때, 또는
첫 만남에 우리는 설렘이라는 단어를 쓴다. 왠지 설렘이라는 글만 봐도 마음이 파르르 떨린다. 기다림 이란 단어에는 정말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글이 주는 어감이란 참 신기하고 과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몇 번의 설렘이 있었나. 잘 모르겠지만 17살 어느 날 어두운 밤 큰 나무에 기대어 내가 좋다고 뜨거운 입김을 불던 그 오빠가 첫 설렘이었나? 나는 심하게 밀었고 그날 이후 만난 적 없었는데 이 나이에 그 생각으로 벌써 설렌다.
강심장으로 태어났는지 나는 설렘을 잘 느끼지 못한다. 감정 표현을 잘 못하고 살아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해서라고 위로하며 살아왔다. 여자로 태어나 성인이 되면 결혼이라는 큰 설렘과 만난다. 1987년 겨울 그랬어야 했다. 맞선 자리에 등 떠밀려 나간 후 어느새 결혼식장에 신랑, 신부로 서있었다. 선보고 한 달이 되기 전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엄마가 선보라 해서 봤고 그 집에 시집가면 고생은 안 하겠다는 당치도 않는 얘기를 핑계로 결혼을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설레었던 기억이 없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도 입덧이 없었다. 졸음이 와 시도 때도 없이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졸곤 했다. 잠이 입덧이었다. 임신을 하면 무조건 화장실 변기를 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줄 알았다. 따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드라마를 보면 그랬다. 배우가 임신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새댁은 임신을 하고도 대놓고 좋아하지도 못했다. 시어머니는 “남 안 가진 애를 밴 것도 아닌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그랬다. 생명을 잉태하고 설렘은커녕 부끄러움을 부른 배만큼 안고 살았다.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도 설렘은 없었다고 들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의처증과 술주정으로 온몸에 멍 도장을 찍지 않았다 했다. 태초에 설렘이란 세포는 내 안에 없었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질 자격이 있었을까? 예쁜 꽃을 보고 멋진 풍경을 봐도 형식적으로 느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다. 이제는 진짜 설렘을 느껴보고 싶다.
살면서 설렘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 하겠지만 좋은 것을 좋다고 표현해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줘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센 언니라 불린다. 사실은 속마음을 들킬까 포장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대학원 입학을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아닌 늦게 시작한 공부로 날 밤을 까먹고 있다. 대학원 강의실에서 젊은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교수님 강의를 듣다니 상상이나 했겠어 내가? 대학 노트를 안고 교정을 가로질러 도서관을 찾아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낮에 캠퍼스를 누비지는 못한다.
주경야독을 해야 하니 주 2회 야간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교수님께서 출석을 부르신다 "남규민"
이쯤 되면 설렐 만 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