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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Aug 23. 2023

흔적

글쓰기라는 묘한 희열

샛별처럼 반짝이는 아이의 두 눈을 보고 있으면 마냥 행복했던 엄마라는 이름으로 흔적을 남기고 아픔을 피해 다니며 잘도 지내왔다.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을 애써 잊어가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지내왔다. 아이를 낳은 달은 유난히 아프다고 누군가 그랬다. 웃음으로 지나쳤지만, 거짓말처럼 아팠다.


어른들의 등 떠밀림에 어쩌다 결혼을 했다. 선을 보고 한 달이 되기 전에 결혼식장에 꽃같이 서 있었다. 하얗게 웃으며 서 있던 나는 그렇게 흔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신혼의 단꿈을 대구에서 시작했다. 신랑은 매일 퇴근하며 막걸리 한 병과 에이스 크래커를 사 들고 오면, 새색시는 연탄불에 냄비 밥을 하고 누룽지도 푹 끓여 알콩달콩 살았다. 신랑이 다니던 회사는 사기를 당해 문을 닫았다.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이사를 가며 식구가 늘어 셋이 되었다. 아주 짧은 새댁 생활이 끝난 뒤, 부른 배를 안고 쌀자루를 배 위로 올리며 배달을 했다. 덕분에 아이는 건강히 자연분만으로 세상에 태어나, 나를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내 전부가 되어준 첫아이는 인생 최고의 흔적이 되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얼굴. 기저귀를 갈아주며 얼굴에 오줌을 맞아도 웃음이 났고, 밤낮이 바뀌어 밤잠을 설쳐도 그냥 좋았다. 돌이 지나고 3살이 되었을 때 연필로 그림을 그려 천재인 줄 알았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나의 첫 흔적은 이제 두 팔로 가뿐히 안아볼 수 없을 만큼 훌쩍 커버렸다.


잘생긴 나의 두 번째 흔적은 많은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아마도 잊고 싶은 일이 더 많았던 때라 기억한다. 병원에서 아이를 만난 후 친정으로 산후조리를 갔다. 첫 아이 때 해보지 못한 친정 산후조리를 경험했고, 원 없이 쉬었던 보름을 보냈고, 그 후로는 쉼 없이 달렸다. 그동안 남편은 쌀가게, 식당, 택시, 탱크로리 운전을 하며 힘겨운 생활전선에서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흔적으로 셋째가 내게로 왔다. 딸아이라 예쁘게 키우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하지 못해 몹시 아픈 흔적이다. 끝까지 엄마로 함께하지 못해 더 아픈 흔적이다. 예쁜 옷도 예쁜 머리핀도 마음껏 해주지 못해 아직도 미안하다. 어른이 되어 갈 즈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서울로 불러 올려 도움을 주고 싶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함께한 시간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설레는 흔적이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얘기를 듣고 불안했다. 나처럼 살면 안 되는데…. 한편으로 걱정이 되지만, 힘들어도 씩씩하게 살고 내 길을 개척하는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엄마 흔적으로 아파했을 항상 미안한 내 흔적들에게 사랑을 보내고 싶다. 내가 남긴 가장 귀한 흔적. 세상에 존재하는 너희들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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