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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Jun 25. 2023

그 시절 아련한 냄새

글쓰기라는 묘한 희열

혼자 시간을 보내고 책 읽기 좋은 공간이 화장실이라니 1인 독서실인가? 간혹 책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지인의 집 화장실에 책이 나란히 서 있는 것도 봤으니, 화장실은 분명 책 읽기 좋은 장소인가 보다. 아직 화장실을 독서실로 사용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


화장실을 비밀스럽게 사용한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라 혼자 씁쓸한 웃음이 났다. 화장실은 누구에게나 비밀스러운 공간이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지옥을 벗어나기 위한 대기실이었다. 그렇다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변장하거나 누구를 죽이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외갓집에서 지내던 나는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고, 엄마가 데려다주는 본가로 향했다. 정확히 누구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을 왜 찍는지도 모르고,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 한 장만을 남겨둔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다. 그것은 헤어짐을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외갓집에서는 첫 손녀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외할머니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손녀가 안쓰러운 만큼, 밥숟가락에 하얀 갈치 속살을 수북이 올려서 입안 가득 넣어 주셨다. 추운 겨울날 이모는 학교에서 발 시릴까 봐 가죽 털 실내화를 만들어 주었고, 외삼촌들은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항상 과자를 사 오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다.


본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무서운 할머니, 화내는 고모, 술에 취한 삼촌들….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린 상황들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적응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현실이었다. 학교 가는 날은 해방되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는 걸레 못 빤다고 혼날 일도 없고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삼촌을 보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친구들은 집에 일찍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집이 싫었다. 집에 일찍 가는 날은 변소가 유일한 피신처였다. 거기는 아무도 날 찾지도 혼낼 사람도 없었다. 재래식 변소 냄새쯤 이야. 모든 두려움을 차단해 주었던 그곳의 향기는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대문 밖에 있던 변소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어도 눈치 볼일 없는 내가 숨기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사건이 터진 건 고모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던 어느 날이었다. 고모는 내가 만나지 못한 고모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친정에 잠시 와있었다. 지금은 길에서 만나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고모의 얼굴도, 존재도 흐릿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무서움에 치를 떨게 했던 그런 존재였다. 그날 고모는 내가 빨아 놓은 걸레를 수도가에 내동댕이치며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순간 눈에서는 불이 번쩍 났고, 코에서 따뜻한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두려워서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며 하염없는 눈물만 쏟아냈다.


 바람에 나부끼는 여린 갈대처럼 작은 어깨가 힘없이 흔들렸다. 아직 살면서 그렇게 아픈 따귀를 맞아본 적이 없다. 얼굴이 퉁퉁 부었고, 말리거나 편들어 주는 사람 하나 없던 그곳은 나에게 지옥과 같았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불쑥 올라오는 순간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해가 지기만 기다렸다. 어둑해지자, 방에서 나를 보며 항상 웃어주던 돼지 저금통을 옷 속에 숨겨서 변소로 숨어들었다. 방금 누가 볼일을 봤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 덩어리 위에 서서 돼지 배를 갈랐다. 가끔 만나는 친척들이 혀를 차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맛있는 거 사 먹어라.”는 한결같은 말과 함께 주었던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둔 것이었다. 한 번도 맛있는 건 사 먹어 보지 못했다.


돈을 세어보니 부산 갈 차비는 되겠고, 이제 도망갈 시간이 문제였다. 갈 곳이 외갓집뿐이었으니 기차 시간을 알아봐야 했다. 부산까지 6시간, 연착하면 7시간이다. 차비가 가장 싼 완행열차를 타야 한다. 동전 소리가 날까 봐 종이에 똘똘 말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돼지는 변소 밑으로 던져 버렸다. 축 사망한 돼지에게 조금은 미안했던 기억이다. 언젠가 배를 갈라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놈의 빰 따귀 사건만 아니었어도 배를 두둑이 채워 보냈을 텐데.


도망은 성공적이었다. 한쪽 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퉁퉁 부어 있고, 실컷 울어버린 탓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나를 보고, 외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와락 안은 채 오열했고, 너무도 그리웠던 할머니 품에서 나도 펑펑 울었다. 하지만 며칠 뒤 삼촌이 데리러 왔고, 나는 다시 지옥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또다시 도망을 쳤고, 다시 끌려 오기를 몇 번. 그 사이 중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 드디어 마지막 탈출에 성공했다.


몇 년 전 그 변소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없어졌다. 이제는 내 기억 속에서 아련한 그 시절 냄새를 풍기고 있다.


다 괜찮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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