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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규민 May 30. 2023

글쓰기라는 묘한 희열

글 길목의 병목현상

'글 못 쓰기 바이러스’를 쳇 GPT에게 물어봤다.


‘뇌에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글을 쓰려고 하면 글쓰기 불능 상태에 빠지는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근육운동 치료나 인지 재활치료 등을 통해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수기로 글을 쓰는 방법 등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작은 글쓰기 능력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똑똑하다며?

뇌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라….


요즘 최상의 트렌드라고 난리도 아닌 쳇 GPT가 불특정 다수에게 툭 던진다. 근육운동 치료나 인지 재활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단다. 이거야 원 내가 심각한 중병에 걸린 듯 기분이 묘하다.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쓴 것이 잘못된 건가? 질문에 따라 답이 다르다고는 들었다. 복잡 미묘한 사람의 감정을 인공지능이 섬세하게 표현하지는 못 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한글로 표현하기는 더욱 어려울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에 잠길 무렵 갑자기 어느 한순간이 떠오른다. 비 오는 5월, 별안간 가슴이 설레던 순간으로 들어가 본다. 미팅 장소에서 딱딱한 업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드르륵 요란한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시 숨도 돌릴 겸 핸드폰을 열어보는데,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쿵쾅거렸다. 자그마치 3수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날 합격 메일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도움을 받았지만 온전히 나의 얘기, 내속을 비워내는 작업으로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첫 도전에 실패하고 글 쓰는 제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듯이 “일기도 꾸준히 써보지 않은 내가 쓰면 얼마나 쓰겠어?”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위로했다. 두 번째 도전도 미끄럼을 타고 이젠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 도전해 보고 안되면 말겠다고. 먹고살기 힘든데 작가는 무슨. 포기할 이유를 구차하게 찾고 있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매끄럽지 않은 단락들 내가 얘기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듬기 시작했다. 거친 글을 나의 느낌과 생각을 양념으로 요리하기 시작하니 맛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경험 작가다. 


그건 그렇다 해도, 지금 나는 분명 글 못 쓰는 바이러스에 지독하게 감염되어 끙끙 앓고 있다. 머릿속에는 글 감이 우글거리고, 가슴은 그것을 꺼내 놓고 싶은 열정으로 펄펄 끓어오르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이맘때면 기억 저편에서 또 다른 내가 울고 있기 때문이리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자꾸만 내 글 길목을 막고 있다.



하필 5월이다. 덜컥 글을 쓰겠다고 작정을 하고 보니 요맘때일 줄이야. 잊을 때도 되었다고 머리는 생각하는데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 해 5월은 잔인했다. 꽃피고 바람 살랑 이는 계절이면 뭐 하나. 나는 평생 잊지 못할 5월이었는데 말이다. 중학교를 보내지 않으려는 할머니를 설득시켜 학비는 내주겠다는 약속을 해준 삼촌이었다.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바람처럼 나타나 할머니에게 돈을 주고 가곤 했다. 그러다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어쩌다 삼촌 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1년쯤 기차 통학을 했었다. 방학이라 부산 외갓집 가는 길에 숙모와 함께 가게 되었다. 친정이 부산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같이 갔다가 올 때는 각자 오기로 약속하고 혼자 집으로 갔더니 숙모가 없었다. 어린 맘에도 큰일 났구나 싶었다. 삼촌은 노발대발 나를 불러 앉혀 놓고 다그쳤다. 같이 갔으면 함께 와야지 왜 혼자 왔냐며 순간 눈에 불이 번쩍했다.. DNA가 폭력으로 만들어졌는지 고모, 삼촌이 조카를 때리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맞은 얼굴을 쥐고 나뒹굴어진 바닥에 피가 흘렀다. 코로 피 냄새가 올라왔다. 내가 쓰러지고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삼촌은 방문을 발로 차면서 나가 버렸다. 누워서 삼촌의 뒤통수를 온 신경을 다해 째려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그 후로 5월이면 맞은 얼굴에 땀띠 같은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맞은 년은 잘살고 있는데 때린 분은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잊고 싶은데 몸이 기억하니 잊을 수가 없다.  글 길목의 병목 현상은 지금 해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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