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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비 Mar 05. 2024

<놉> 계승과 기록의 장

영화 <놉> - 조던 필 - 2022

<놉>의 시놉시스는 매우 간단하다. 어느 날 목장 상공에 괴생명체가 등장하고, 주인공 남매는 그것을 찍어 유명해지고자 한다. 하지만 <놉>에 담긴 이야기는 간단하지 않다. <놉>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착취하는 할리우드에 대한 이야기고, 흑인의 비가시성에 대한 이야기고, 영화 산업에서 너무나도 쉽게 대체되어 버린 이들과, 스펙터클을 원하는 우리, 마침내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놉>에는 진재킷을 이용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에메랄드와 오제이 역시 진재킷을 찍어 부와 명성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헤이우드 남매를 응원하게 되는 걸까? 그들 진재킷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아니고, 진재킷이 그들의 땅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며, 공익을 위해 진재킷을 타도하려는 것도 아니다. 진재킷을 찍기 위해 몰려온 방송국 사람들과 헤이우드 남매의 차이점은 딱 하나다. 바로 그들이 흑인이라는 것뿐이다.


조던 필의 영화 <겟 아웃>과 <어스>는 노골적으로 흑인 사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다룬다. 그에 비해 <놉>은 주인공 남매가 흑인일 뿐 흑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조던 필의 다른 어느 영화보다도 <놉>에서 흑인의 비가시성이 가장 돋보인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에메랄드와 오제이가 단순히 주인공이어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흑인이 헤이우드기 때문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영화에 존재했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그 흑인 기수의 이름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헤이우드 남매가 진재킷을 찍는 것에 집착하는데도 밉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게 그들에겐 잊히지 않기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에메랄드의 욕망은 이제껏 외면당하고 착취당한 흑인의 역사와 맞물려 정당한 목소리가 된다. 헤이우드 남매는 진재킷을 찍어 이번에야말로 기억되고자 한다.



물론 영화 산업이 이용하는 게 흑인뿐만은 아니다. <놉>은 영화 산업에서 너무나도 쉽게 대체되어 버리는 이들을 다룬다. 헤이우드가 대변하는 흑인이나, 현장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 주프가 대변하는 동양인(그리고 아역배우), 고디와 럭키, 진재킷이 대변하는 동물까지. 특히 주프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사실 주프가 등장하는 시간은 길지 않고 상당히 빨리 영화에서 퇴장하지만, 엔젤이나 홀스트보다도 중요한 캐릭터가 주프다.


주프는 고디 쇼의 참극에서 살아남고 그걸 반복한다. 주프는 살육을 한 고디와 주먹 인사를 나눈다. (정확히는 주먹이 닿기 전에 고디는 사살당한다.) 그 순간 주프는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대신 자신은 그것을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을 얻는다. 그는 자신이 고디와 '교감'한 것이 아니라 '길들였다'라고 믿으며, 마찬가지로 진재킷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 진재킷을 이용할 생각을 한다. 결국 주프는 진재킷을 서프라이즈 쇼에 이용하며 고디 쇼를, 그리고 그 참극을 재현하고야 만다.


주프와 오제이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캐릭터다. 주프는 진재킷을 길들이기 위해 말을 미끼로 주지만 오제이는 자기 자신이 직접 미끼가 된다. 주프는 진재킷을 "길들일 수 있다"라고 착각한 반면 오제이는 진재킷이 "자의식이 있어" 꺾을 수 있다고 한다. 주프는 착취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다시금 명예를 얻고자 하지만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오제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주프는 진재킷이 인간들을 지켜본다고 말하며 '뷰어'라고 이름 붙인다. 오제이는 진재킷을 맹수로 취급한다. 눈을 쳐다보면 잡아먹히는 맹수. 오제이는 진재킷을 맹수라고 생각하여 자극하지 않기 위해 눈을 피하지만, '뷰어'를 똑바로 쳐다본 주프는 잡아먹히고 만다. 재미있게도,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진재킷의 시야는 마치 사각형의 스크린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진재킷의 '입'은 꼭 카메라처럼 생겼다.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 것은 배우들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나는 <놉>이 최종적으로는 계승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좋다. <놉>에는 두 가지 형태의 계승이 나는데, 하나는 카메라의 역사와 함께 가는 영화의 역사다. 오제이와 에메랄드는 처음에는 CCTV로 진재킷을 촬영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그다음은 홀스트의 수동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하려고 한다. 결국 정말 진재킷을 담아낸 카메라는 주피터스 클레임에 있는(서부 시대의) 수동 셔터 카메라다. 최초의 영화인 흑인 기수의 사진처럼, 에메랄드가 찍은 진재킷은 정지되고 연속된 사진이다. 에메랄드와 오제이는 진재킷을 찍기 위해 점점 과거의 방식을 차용하고, 이런 흐름은 영화 역사에 대한 존경과 찬사로 느껴진다.


하나는 최초의 흑인 기수인 헤이우드에서 에메랄드에게로 전해지는 계승이다. 헤이우드의 정신은 최초의 영화에 존재한 알리스테어 E. 헤이우드로부터 오티스, 오티스주니어, 그리고 에메랄드에게로 전해진다. '진재킷'이라는 이름은 원래 에메랄드에게 맡겨져야 했을 말의 이름이다. 오티스는 원래 에메랄드에게 진재킷을 맡기며 말을 기르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촬영이 결정되며 진재킷을 오제이에게 맡긴다. 결국 에메랄드는 아버지에게 말을 기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에메랄드는 가업에 함께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돈다. 위기의 순간 오제이는 지켜보겠다는 사인을 한 뒤 에메랄드에게 진재킷을 맡기고 퇴장한다. 에메랄드는 아버지에게서는 말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만 오제이에게서 진재킷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마침내 성공한다. 에메랄드의 진재킷 사진은 알리스테어부터 오제이까지의 의지를 계승한 헤이우드의 기록이다.


그리고 계승이 아름다운 것은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계속되는 만큼 영원하지 않다. 모든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고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통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었더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더 가치 있는 허구와 낭만을 섞어 시대를 보존하고 이어가고자 한다. 영화란 불멸이다. 그리고 스펙터클은 어쩔 수 없이 매력적이다.




<놉>은 풍부한 메타포와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메시지를 읽지 못해도 충분히 재밌을 만큼 영화의 1차원적인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다. 화면도 아름답고 사운드는 정말 압도적이다. 진재킷 파트로 넘어간 이후 황야의 추격씬은 정말이지 스펙터클의 본보기다. 영화의 시작부터 깔려있는 음산함은 럭키 파트에서 최고조에 이르러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하고, 진재킷 파트에 이르러 쾌감과 희열로 변한다. <놉>은 서부극 같기도 하고, 호러 같기도 하고, SF 같기도 하다. 장르의 구분이란 언제나 모호한 것이지만 <놉>은 사람들이 그런 '장르'에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두 시간가량의 러닝타임에 영화적 재미와 메시지를 꽉꽉 담아 전한다.


<놉>은 우리가 소비하는 영화의 이면을 비추며 '찍는 것'과 '보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착취적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 결국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놉>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긍정한다. 영화 산업은 어쩔 수 없이 착취적이다. 어떤 이들은(찍는 이건 찍히는 이건) 스크린에서 불멸을 얻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놉>은 그런 영화 산업을 전혀 옹호하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낭만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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