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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Dec 06. 2018

[에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베트남

- 무이네, 기억이 침식되어 추억이 쌓이는 곳

첫 글을 적은 지 열흘이 훌쩍 넘어서야 다음 이야기를 풀어본다. 호찌민에서의 3일을 보내고 4일째가 되는 아침 아름다운 해변과 사구로 유명 무이네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트남에서 처음 접하게 된 슬리핑 버스. 한 때 한국에서 서울-대구 간의 고속버스를 타며 편안한 시트에 곤히 잠이 들곤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슬리핑을 하라는 버스는 처음이었기에 은근 기대되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무척이나 편안한 승차감에 놀랬지만, 우리보다 키가 큰 파란 눈의 아저씨들의 긴 다리는 꽤나 고생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 가지 불편함은 있었다. 호찌민 거리에서 걸을 때도 느낀 점이었지만 이 곳의 운전자들, 수많은 차와 오토바이는 경적소리로 대화를 하는 듯하다. 심지어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무이네로 이동하는 여정 동안 끊이지 않는 경적소리에 사실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그 점만 빼면 무척이나 편안하게 무이네, 미리 예약해둔 리조트 바로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노부부의 샘 (부재 : 시샘)

무이네는 아름다운 해변과 사구로 유명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구가 생긴 연유에 대해서 미리 공부하진 않았지만, 그곳에 가보니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닷바람이 무척이나 매서웠다. 아마 그 때문인지 이곳 무이네의 명소들은 이러한 환경과 떼놓을 수 없는 듯하다. 요정의 샘도 그중 하나이다. 요정의 샘은 바람과 물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작은 협곡인데, 그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하여 요정의 샘이라 불린다. 지프 투어를 통해 어렵지 않게 요정의 샘에 들릴 수 있었고, 적갈색의 황토로 이루어진 협곡이 꽤 멋스러웠다. 잔잔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요정이라 불리는 이 협곡을 걸을 수 있는데 발가락 사이사이로 전해지는 황토의 부드러움도 좋았다. 물에 젖은 황토와 베트남의 따뜻한 날씨는 오랜 걸음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나는 어딜 가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관찰한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기대와 설렘을 품고 이곳에 왔는지, 이곳에 도착한 지금의 마음은 또 어떠한지, 더 나아가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장소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그 모든 것이 궁금하다. 호찌민에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 나라에는 흔히 말하는 서쪽 나라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블로그 등으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장소에는 한국인들도 많았지만, 평범한 길거리에서는 서양인들이 눈에 더 많이 띄었다.


지금부터는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이어진 한국, 한국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더 보수적인 경상도에서 태어난 심지어 남성인 나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의 관광지를 다녀보면 대부분이 가족단위이거나 젊은 부부 또는 어린 커플이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을 살펴보면 우리처럼 가족단위, 젊은 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집단이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년의 부부 관광객이다. 왜 한국인 관광객에서는 그러한 집단을 쉽게 찾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표현의 문제를 그 이유로 꼽고 싶다.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 원인들로 인해 우리의 아버지들은 표현에 인색한 것 같다. (20대 후반인 내 또래의 아버지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많은 아버지들이 그런 듯하다.) 아마 그 때문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치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경험하고 느낀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억이 아니라 추억을 만든다는 점에서 훌륭한 표현의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현에 인색하고 표현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는 집이 아닌 타지에서 중년부부의 사랑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표현에 무척 인색한 중년 남성들이다. 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각자의 표현방식은 다르겠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이라면 좀 더 확실하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요정의 샘을 걸으며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한 중년부부가 담긴 사진이 있었다. 꽤 즐거워 보였다. 나도 그렇게 세월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싶다.



끌림

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나와 비슷한 감정 및 취향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중에는 누구 하나 이유를 확실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끌리는 것들이 있다. 무이네의 사구에서 나는 세 가지 끌림을 느꼈다. 첫 번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은 끌림, 두 번째는 높은 곳에 대한 끌림, 세 번째는 석양에 대한 끌림이다. 여전히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시 생각해본 바에 대해 끄적여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은 끌림. 무이네의 사구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얀 모래의 사구와 붉은 모래의 사구. 하얀 모래 사구의 특징 중 하나는 ATV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이곳을 차가운 기계에 의존하여 느끼긴 싫었기에 가장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심지어 남들이 가지 않은 방향의 정상으로. 이러한 결정에는 창작에 대한 욕망과 남들보다 더 우월하고자 하는 욕망 등 인간의 본성이 뒤섞여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곳을 남들이 규정짓는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여러 시각으로 순간을 느끼고 싶었고,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했기에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이 곳의 바람과 고요해 보이는 사구의 따가운 바람과 쉴 새 없이 떠내려가는 모래를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뒤를 돌아 발견한 나의 발자국은 그에 대한 작은 선물과 같았다.


높은 곳에 대한 끌림. 사구의 정상은 그 아래쪽보다 훨씬 높았다. 무이네의 풍경을 조망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이후 달랏에서 올라간 랑비앙산도 마찬가지이다.) 도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사구의 모래처럼 작게 보인다. 마을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모든 장면들이 눈에 담긴다. 이것이 바로 높은 곳의 매력이다. 새로운 시각이다. 마천루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높은 곳에 있기에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면을 괄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석양에 대한 끌림. 많은 이들이 일출 또는 일몰의 순간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찾아보지는 않는다. 해는 매일 뜨고 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나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날씨에 따라 그 풍경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단순히 그 현상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드라마나 영화 같지는 않다. 우리 인생의 스토리는 시시한 영화와 드라마보다 더 사실적이고 놀라울 수 있지만, 극적이지는 않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평범한 순간조차도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특수효과로 더 극적 이어진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러한 순간이 필요하다. 그때 찾는 것이 일출과 일몰이 아닌가 싶다.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순간, 내 마음속에는 웬만한 영화 대사보다도 멋있고 굳은 다짐이 있기에 이 것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특수효과가 필요하다.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일출이 필요하다. 무이네에 처음 들렀다. 꽤나 마음에 드는 장소다. 아름다운 붉은 사구가 내 마음의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할 수 있는 강한 효과가 필요하다. 내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필요하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더 붉게 변해가는 작은 모래, 검은 형태로 하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물들어가는 바로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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