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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Dec 12. 2018

[에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베트남

- 달랏, 굽이굽이 흘러가는 길, 바람, 꽃 그리고 행복

무이네에서의 짧은 1박을 마치고 친구와 헤어져 홀로 달랏으로 향했다. 친구에게 추천받아 선택하게 된 도시, 달랏. 베트남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고지대로 1년 내내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는 그곳은 가을의 새곰한 바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이네에서 달랏으로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약 5시간. 작은 미니버스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아마도 휴가를 보내러 가는 파란 눈의 가족들, 시골로 내려가는 현지의 사람들, 그리고 홀로 여행하는 나. 제각각의 생각을 실은 버스는 굽이진 산길을 따라 꽃의 도시로 향했다.


따스한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 달랏

달랏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오후였다. 달랏의 공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차가웠으며, 버스를 내림과 동시에 따뜻한 외투를 챙기지 않은 것에 큰 후회를 했다. 곧장 숙소로 가 오랜 시간 머물었던 미니버스의 흔적을 씻어냈다. 배도 고프고 오늘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하기가 아쉬워 달랏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어떤 도시를 갔을 때 가장 가고 싶은 장소 중 하나는 대형마트이다. 재래시장 또는 전통시장 구경도 재밌지만, 현대인에게 시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대형마트이기에 마트만큼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달랏 야시장으로 가는 길에 대형마트가 있길래 허기도 해결할 겸 그곳으로 향했다.


마트의 규모는 꽤 컸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컸기에 입구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 하지만 덕분에 달랏의 젊은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트 뒤편 넓게 펼쳐진 공터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비보잉을 연습하고 있었다. 춤사위가 어찌나 역동적인지 이미 어두워진 풍경으로 인해 제대로 사진을 담을 수 없었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이 나라의 미래와 젊은이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헤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내려오니 마트와 쑤언흐엉 호수 사이로 넓은 광장이 펼쳐졌고, 수많은 달랏의 시민들이 밤공기를 쐬러 나와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가족들, 또래 친구들과 서로 팔짱을 끼며 사람 구경하는 학생들, 정말 다양한 이곳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광장의 순기능이다. 여러 사연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한 곳에 모였다. 우린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여러 이야기를 뒤로한 채, 쑤언흐엉 호수를 따라 달랏 야시장으로 향했다. 프랑스 식민시대가 나은 이 인공호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으며, 식민지의 산물이라기엔 무척이나 낭만적이었다. 과거 이곳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을 이 호수가 지금은 이곳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낭만과 저마다의 추억, 저마다의 쉼터를 제공하는 곳이 되었음을 같은 식민지를 겪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창경궁 안의 하얀 철제 온실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차가운 공기와는 달리 달랏의 야시장은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야시장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람 구경을 좋아하는 나의 평소 습관은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많았으며, 연인 또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많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표정에는 행복이 묘한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서만큼은 근심과 걱정이 없어 보이는 그런 표정이다.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의 표정.


호찌민과 무이네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의 모습이 저마다도 너무 달랐다. 인종이 다르거나 직업이 다르거나 혹은 그 어떤 것이 달라서가 아니었다. 사람의 표정을 행복의 척도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지만 이 점을 염두하고 보아도 너무나도 대척점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들이었다. 하지만 달랏의 사람들은 전혀 달랐다. 소박하고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친구와의 나들이로 한껏 꾸민 학생들의 모습,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선 아빠와 엄마와 아들과 딸,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고 호수를 한 바퀴 걷는 직장인, 우연히 이 곳을 들르게 된 여행객까지. 모두가 은은한 웃음을 품고 그렇게 걷고 있었다. 역시 행복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닌 듯하다. 덕분에 나도 행복했다.



한걸음 한걸음 느껴본 랑비앙 산

달랏에서의 두 번째 날. 나는 이 하루를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기를 마음먹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랑비앙 산. 달랏은 북쪽에는 이곳에서 가장 고지대인 랑비앙 산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산 아래에 준비된 지프차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지만 나는 랑비앙 산의 구석구석을 보고 싶었기에 두 발로 오르기로 결정했다. 달랏에서 특히나 기대했던 곳만큼 산의 입구부터 푸른 녹음이 무척 아름다웠다. 푸른 입사귀를 벗 삼아 돌아다니는 말들의 모습에도 한껏 여유가 느껴졌다. 전체적인 색감이 내가 무척 좋아하는 파스텔 톤이었다. 하늘의 색, 들판의 녹색, 도로의 은은한 회색 그리고 지프차의 색까지.


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여전히 달이 떠있었다. 함께 떠있는 달과 해가 어색하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볕이 간지러웠고, 푸르는 녹음 사이로 드문드문 피어있는 들꽃들이 반가웠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산이 가파르고 아스팔트 길로 계속되어있어 오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올라갈수록 드넓게 펼쳐지는 달랏의 풍경에 위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는 다른 여행객들이 손을 흔들며 전해준 인사도 힘이 되었다. 풍경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신기하다. 음악을 들으며 올라가는 이 길과 내 눈동자에 담기는 모든 풍경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올라가는 도중 흙길로 된 등산로가 있었지만...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함부로 도전해보지 못했다. 동행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그 길도 경험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도중, 드디어 랑비앙 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가히 아름다웠다. 이 지방이 전체적으로 높은 지역이라 산 정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다보이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다른 어떠한 장애물 없이 넓게 펼쳐진 풍경에 마음이 탁 트이는 듯했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인 만큼 산 정상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기념품샵의 건물도 마치 레고로 쌓은 듯 귀여웠고 랑비앙 산의 폰트 역시 이 산의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산의 가장 좋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관광객들의 사투마저도 귀여웠다. 그러한 사람들을 모두 기다리고 나 역시도 이 산의 정상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다. 걸어오길 다행이다.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산의 정상이 이리도 감동적이었을까 생각이 든다.



굽이굽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다. 베트남에서도 특히 달랏은 선선한 날씨로 커피가 유명한 지역이다.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고, 커피는 이 도시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 커피의 최대 산지 중 한 곳인 만큼 커피농장을 꼭 들르고 싶었고, 사실 스쿠터를 이동수단을 택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달랏 시내에서 커피농장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저 이동하는 시간이었지만 생각지도 않게 이 시간이 달랏에서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굽이굽이 계속된 산길.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펼쳐진 산의 모습과 왼쪽으로 펼쳐진 풍경들이 아직까지 눈 앞에 어른 거린다. 빽빽하게 발 밑을 가득 채운 푸르른 나무와 산 중턱에서 잠시 쉬고 있는 구름, 그리고 파란 하늘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졌고 초록의 풍경에 자수처럼 박힌 노란 꽃들이 이를 심심하지 않게 꾸며주었다. 이 풍경을 꼭 사진으로 담고 싶었기에 셔터를 여러 번 눌렀지만 도저히 담을 수 없었다. 하늘과 나무와 꽃이 내뿜는 저마다의 빛이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카메라의 렌즈는 어떤 빛을 담아야 할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풍경은 풍경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순간 황홀함에 빠진 나의 감정이 함께 였기에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어 느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카메라의 차가운 감촉으로는 아직 그것을 다 담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듯 커피 농장으로 가는 길에 너무나도 매료되었기에 커피 농장에 대한 감흥은 그다지 없었다. 넓게 펼쳐진 커피나무와는 달리 쇠 상찰에 안에 가두어진 족제비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기에 간단하게 한 잔의 커피만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는 길에 점찍어둔 장소가 있어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지나쳐온 산의 풍경이 한눈에 담기는 곳이었다. 마침 두 분의 승려들이 계셨다. 항상 멀게만 느껴지는 영역의 분들이지만 나처럼 스쿠터를 타고 이 곳에 매료되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니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두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에는 나라도, 종교도, 가치관도 없다. 그저 마음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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