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그런 친구가 있었더랬지
2019년이 끝이 나고 2020년도 벌써 2월이 된 지금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2019년 나의 영화를 선정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려고 보니, 2018년 나의 영화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친한 친구들,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등 여기저기에 얘기를 떠벌리고 다녔음에도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글로 남겨둔다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다. 2018년 나의 영화로 일찍 감치 마음에 둔 영화가 있다. 바로, '요노스케 이야기 (2013)'이다.
일본에서는 2013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그땐 이 영화에 대해서 들은 바가 전혀 없었고 5년이 지난 2018년에나 한 네티즌의 영화 추천글을 통해 이 영화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보게 된 영화이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는 지금이라도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감과 동시에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기만을 바랬던 이 영화를 결국엔 다 보았다는 아쉬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주인공 '요노스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에 대한 나의 감상을 시작하겠다.
영화의 주인공 요노스케는 일본 규슈 지방 출신의 순수한 청년으로 도쿄로 대학을 진학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상경하게 된다. 대학 입학 후 요노스케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그들은 이후 사회로 첫 발을 딛게 된다. 이후, 요노스케의 친구들은 지친 일상 속에서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요노스케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갓 입학하여 어리둥절하던 신입생 시절, 함께 미팅을 나갔던 기억, 풋풋하고 순수했던 요노스케의 미소 등. 하지만, 아무도 요노스케의 최근 소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영화는 그 시절 친구들에게 순수하지만 깊은 우정을 보였던 요노스케가 어떤 삶을 살았고 현재는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듯 관객을 극으로 이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의 중심이 주인공인 요노스케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요노스케가 있다. 그리고 요노스케라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가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야기가의 중심은 요노스케 자신이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요노스케의 친구들이 기억하는 요노스케의 모습이다. 각자가 기억하는 요노스케의 모습이 각 에피소드를 통해 전해진다. 어리숙하지만 의리 있는 친구, 엉뚱한 생각을 가진 친구, 연상을 여성에 반해버린 철없는 소년, 풋풋하고 수줍은 남자 친구 등 친구들이 그리는 다양한 모습을 요노스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친구들이 공유하는 추억은 거의 없다. 각자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요노스케의 기억만이 남아있고 그마저도 흐릿해지던 찰나 문득 어떠한 계기로 인해 친구들은 요노스케를 떠올리게 된다.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이후 더 소중해진 삶과 기억들로 인해 잠시 묻어놓은 타임캡슐처럼 말이다. 아마 모두에게 절대 잊을 수 없지만 자주 꺼내보지 않는 어릴 적 앨범이 있듯이 주인공들은 기억 속 앨범을 꺼내보기 시작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수록 기억은 다시 명료해지고 그때 기억을 되시기며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퍼져간다.
영화가 끝날 때는 정말 아쉬울 정도, 좀 더 그쪽 세계에 머물고 싶었다.
- NAVER 영화 관람객 평점 중
우연히 펼친 앨범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고 그 기억을 다시 추억하고 싶고 혹시라도 내가 기억하지 못한 사진이 있다면 새로운 반가움과 기쁨이 있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이러한 감정이 절대 낯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향수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때문인지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노스케 이야기'라는 앨범을 닫고 싶지가 않다. "영화가 끝날 때는 정말 아쉬울 정도, 좀 더 그쪽 세계 머물고 싶었다"라는 한 네티즌의 한줄평이 그러한 마음을 잘 나타내 준다.
요노스케 이야기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요노스케와 같은 친구가 있었지라는 것과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요노스케와 같은 친구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는 각별했으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락을 하려 노력해도 닿지 않는 그런 친구가 있다. 학창 시절 그 친구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삶을 대하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나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만들곤 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고 덕분에 나의 학창생활을 더욱 다채로워졌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만나던 다른 친구들도 그의 행방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수년 후 마침 그 친구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고 직접 통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우리에게 연락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결국 친구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그리고 다시 수년이 흘렀다. 비록 그 친구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와 함께 했던 추억만큼은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 기억 속에 머물러있는 덕분인지 기억은 점점 더 좋게 숙성되어 가고 있고 아마 우리 기억 속엔 영원히 열정적인 학창 시절의 모습으로 머물러있을 것이다.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궁금도 하지만 아마 그 친구라면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미래에 가끔 응원을 해주는 것만이 내 몫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나에게 요노스케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요노스케처럼 기억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될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신념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다른 이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고 칭찬을 듣고 나름대로는 귀감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먼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며 주변 사람들과 그 순간을 함께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란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도 좋지만 소소하게 내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다는 사람이 되는 것도 그에 만만치 않게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한 개인에게도 요노스케와 같이 기억되는 인물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사회적인 차원에서 기억해야 하는 '요노스케'적 인물들이 있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동명의 소설이며, 이 소설은 신오쿠보역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 사건은 2001년 신오쿠부역에서 일어난 일이며, 술에 취해 철로로 떨어진 승객을 구하기 위해 철로로 몸을 던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일본인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의 이야기이다. 안타깝게도 세 사람은 모두 사망했지만, 인명을 구하기 위해 서슴없이 몸을 던진 두 사람의 숭고함이 크게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일이기도 하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이 사건의 주인공인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를 모델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소설과 영화는 한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아름답고 숭고한 인간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다시 한번 그 인물과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예술작품으로써 그들의 삶은 사회 전체의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게 된다.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과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세키로 시로씨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게 되고 사회 전체에 알리게 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전에는 관계가 없었던 여러 사람들에게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과정이 된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사회적 가치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행동의 경중을 떠나서 사회를 위해 크고 작게 헌신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이러한 사람들도 우리 사회가 한마음으로 기억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요노스케 이야기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