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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Mar 15. 2020

『그린북』- 2019년 나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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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2019년 나의 영화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3관왕(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의 주인공인 '그린북'이다.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인 2019년 1월 9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돈 셜리 박사와 그의 친구 토니 발레롱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로, 개인적으로 개봉 이전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기다린 작품이었다. 영화 자체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고 오스카의 주인공이 되었듯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돈 셜리 박사의 유족들이 영화의 이야기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주장을 잡음은 분명히 존재했고 나 역시도 그 진위의 여부를 확실히는 알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했고, 그 당시 나의 마음을 깊이 울린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2019년 영화로 이 영화를 꼽고 싶다.


그린북 (2019)


그린북


    영화의 배경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심했던 19세기 중반 미국이다. 입담과 허풍 그리고 주먹을 믿고 살아가던 이탈리아계 이주민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은 어떤 박사의 운전사 면접을 보게 된다. 그 박사는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마허샬라 알리)였다. 돈 셜리 박사는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인종차별로 인해 활동 자체가 위험할 수 있는 미국 남부로 투어 공연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투어 기간 동안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보디가드를 구하고 있었다. 토니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게 산 돈 셜리 박사는 그를 고용한다. 그렇게 완전히 상반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와 돈 셜리 박사의 남부 투어가 시작된다.


    투어 초기에는 생각, 행동, 말투,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여러 가지 점들로 인해 갈등을 빚는 듯했지만, 어느새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서로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하게 된다. 돈 셜리 박사는 토니의 수다스러운 모습에 처음에는 싫증을 내지만 점점 그와의 대화를 즐기게 되었고,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처비 체커', '리틀 리처드', '샘 쿡' 등 당대 최고의 가요를 접하고, 평생 처음으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도 맛본다. 심지어 손으로 들고. 반면, 토니는 그의 입장에서는 교양이 지나치고 까다롭기까지 한 돈 셜리 박사의 고상함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매일 밤 혼자 위스키를 마시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낀다. 이후 투어가 계속되고 남부로 향할수록 심해지는 돈 셜리 박사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에 함께 분노하기 시작했고, 돈 셜리 박사가 지금껏 내색하지 못한 그의 숨겨진 모습과 상처에 대해 동등한 인격체로써 공감하게 된다.


    여행이 거듭될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짙어지고, 그들의 우정은 깊어져 간다. 긴 투어를 마치고 돌아간 각자의 집, 토니의 집에서는 그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함께 맞이하기 위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반면 돈 셜리 박사는 기품 있고 우아하지만 다시 쓸쓸해진 적막한 집에 홀로 남는다. 그리고 그는 그의 친구, 토니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 이제는 두려움 없이 먼저 손을 내민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우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언터처블: 1%의 우정 (2011)'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달하는 경계를 무너트린 진실되고 따뜻한 우정이라는 이야기 외에도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영화 전반에 극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다양한 음악이 있고, 두 번째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소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중간중간에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다음의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음악


    돈 셜리 박사는 천재 피아니스트로 영화의 이야기는 그의 투어 공연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돈 셜리 트리오의 연주 자체가 핵심은 아니지만 그들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그 공연 장면을 잠시 볼 수 있다. 투어 공연에서 돈 셜리 박사는 비록 대중적인 재즈 음악으로 공연을 하지만, 그는 사실 클래식 피아니스트이다. 하지만, 음반회사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흑인을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그가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뻔한 흑인 음악가가 되기를 권유했다.


    토니와의 대화에서 아무도 자신처럼 쇼팽을 연주할 수 없다는 셜비 박사의 당당한 이야기에 그의 클래식 연주 실력을 차마 볼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다행히 극의 막바지에 우리는 그의 쇼팽을 들을 수 있다. 쇼팽 에뛰드 Op. 25-11 '겨울바람'. 그와 같은 흑인들로 가득한 식당을 색다른 전율로 채운 그의 연주에 비록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환호와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이후 그는 식당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재즈 음악을 협주한다. 극 전반을 관통하는 인종을 기준으로 취향, 말투, 식성 심지어 음악을 나누는 세상의 편견을 무너트리는 순간이다.


   당시 나는 재즈 음악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특히,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지겹도록 듣던 때였다. 이 때문에 '오렌지 버드' 식당에서 돈 셜비 박사의 쇼팽 에뛰드의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반가움과 동시에 쇼팽 에뛰드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멜로디와 악센트 그리고 주법의 Op. 25-11 '겨울바람'을 선곡한 점에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연주를 했다는 점에 함께 기뻤고, 연주 시작하기 전 피아노 위에 놓인 위스키 잔을 내려놓는 모습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그의 존중과 경외심 그리고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제대로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그 간의 연주 중 가장 멋있는 연주를 함과 동시에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가 음악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순간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돈 셜리 박사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충분히 백인 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 답지도 않고,
충분히 남자 답지도 않으면...
난 대체 뭐죠?


    돈 셜리 박사는 그 당시 사회 주류를 이루는 백인으로부터 차별받는 유색인종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흑인들과는 다르게 보다 백인과 비슷한 엘리트 삶을 모방하여 살았고 이 때문에 그는 동시에 흑인들로부터도 배척당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돈 셜리 박사도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적인 취향에서도 소수이다. 음악가로서 오랜 투어 생활로 인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그는 남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였다. 이 때문에 그는 늘 혼자였다. 문화인이 되고 싶은 돈 많은 백인의 요청에 공연을 하는 음악가이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음악가가 아니라 그냥 흑인이다. 하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흑인들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거부당한다. 충분히 백인 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 답지도 않으면서 충분히 남자 답지도 않은 그는 혼자였다.


    더욱 재밌는 것은 토니도 그가 소수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와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계 이주민으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대륙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에 잘 정착했을지 몰라도 그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돈 셜리 박사보다 경제적으로 부족했으며,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가 되기 전 번번한 직업 없이 매일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고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에 참여하고 마피아들의 불법적인 의뢰에를 수행하는 등 바둥거리며 살아왔다. 그의 생각엔 그의 세상이 더 흑인스럽다.


    둘은 각자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모습과 행동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신들의 대처방법을 보인다. 토니는 자신을 막 대하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돈 셜리 박사는 기품을 지키며 자신들의 인권과 권리를 높이기 위해 백인들의 차별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어를 이어간다. 다행히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이해해나가고 결국은 친구가 되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끝내 완전히 버리진 못한다.


    사실 이런 차별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양에서의 동양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그 정도는 약해졌지만 남아있으며, 성적 소수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과연 왜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어색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차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다름을 성숙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선 모든 면에서 완전하게 다른 존재가 없다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점에 집중하기에 앞서 우리는 생명체라는 선행되는 동질이 있음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 행동방식, 말투, 음식과 음악에 대한 취향 등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다른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방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 슬픔, 질투, 분노 등 이러한 감정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것이며, 단지 그 대상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감정의 본질이 다른 것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조금 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린북' 이외에도 최근 소수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이 많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 '문라이트 (2016)', '캐롤 (2015)' 등. 예전에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의 대상과 모습이 나와는 다른 것에 흥미를 느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들의 감정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 감정이 누군가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적적해지곤 한다.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돈 셜리 박사


변화


    이러한 나의 생각과 괘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시대보다는 분명히 차별의 정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영화 속에서도 조금은 살펴볼 수 있다. 토니는 극 초반에 자신의 집을 수리하러 온 흑인 배관공들이 사용한 물 잔을 쓰레기통에 바로 버린다. 그 역시도 흑인에 대한 차별을 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흑인 배관공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이탈리아어로 그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다. 하지만, 셜리 박사와의 투어를 마친 후 토니는 달라진다. 셜리 박사와 진정한 친구가 되었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의 변화된 모습에 자연스레 그의 가족들도 동참한다. 그의 변화가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이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투어 중에 마주치게 되는 두 번의 경찰의 모습에서도 대비되는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심지어 통금시간이 정해져 있는 남부에서 마주친 경찰들은 단순히 셜리 박사가 흑인이라는 점과 그런 셜리 박사의 기사 역할을 하는 토니가 이해되지 않는 듯 두 사람 모두에게 무례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참지 못한 토니의 충동적인 행동에 그들은 심지어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한번 경찰의 요청으로 차를 세워야 했던 장면에서 긴장감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경찰은 토니 일행의 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고 덕분에 더 심각한 사고 없이 그들은 제 때에 맞춰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처럼 대비되는 모습에서 변화 조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차별적인 대우에 대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면서도 모두가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 속도에 누군가는 만족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다행인 점은 어쨌든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의 나의 글이 누군가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히 담겨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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