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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Dec 12. 2020

직장인 뮤지컬 이야기 #3

5막 ~ Epilogue

5막. 본 공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예정된 날짜에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과연 다행인 일일까란 생각도 들었다. 9월 한 달 동안 수업과 연습을 못한 터라 공연을 올리기에는 준비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연 전까지 남은 한 달 동안 합을 맞춰보지 못한 장면들을 잡고 춤이 세부 동작을 익히고 노래들의 화음을 맞추는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 저녁까지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직장인인지 뮤지컬 배우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연을 보러 오는 분들께 티켓 값어치 이상의 무대를 전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습 과정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모든 사람들에게는 본업이 있었고 뮤지컬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면에 따라서 필요한 등장인물들이 있는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연습 일자를 맞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멤버마다 공연에 대한 기대 수준과 연습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의 정도가 달랐다. 누군가는 개인의 일정을 모두 제쳐두고 연습을 우선으로 생각하겠지만 모두가 그래야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 이상만 된다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에너지만 쏟으면 된다. 공연에 대한 완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일반인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틀에서 공연의 에너지가 잘 전달된다면 충분히 성공적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섬세한 연기와 디테일한 동작까지 맞춰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위의 경우에서 욕심이 큰 쪽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연습이 거듭될수록 본 공연에 대한 걱정이 커져갔다. 일단 나부터가 준비가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애석하게도 흘러만 갔고 리허설과 본 공연만이 남았다. 걱정은 리허설에서 가장 커졌다. 공연 전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춰보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단체 춤 장면의 동선이라던지 합이 어긋나는 부분이 꽤 발생했다. 하지만, 무대 세팅, 분장 등 부수적인 것들로 인해 연습에 쓸 수 있는 시간도 부족했다. 지금부터는 각자가 스스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연 날이 밝았다.


공연은 3시와 7시로 2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3시 공연에서 조연 및 앙상블 역할을 맡았고 7시 공연에서 서브 주인공 중 역할을 맡았다. 결혼식 축가, 전국노래자랑(예선) 등 여러 무대를 경험해봤지만 새로운 무대는 늘 긴장되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연이 끝난 후의 희열을 잊지 못하고 모험에 뛰어드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3시 공연의 막이 먼저 올랐고 초반부 주연 배우들이 장면이 진행되었다. 나는 1막 3장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첫 번째 대사에서부터 실수를 해버렸다. 경상도 사투리로 라디오 사연을 소개하는 대사였는데 20년을 경상도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투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최악의 시작이었으나 지나고 나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실수 덕분이라고 해야 될지 긴장이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무대를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몇몇 장면에 더 등장했고, 3시 공연은 무사히 막을 내렸다.


그리고 7시 공연의 시간이 다가왔다. 함께하는 배우들과 파이팅을 하고 오프닝 무대의 조명이 밝았다. 춤 동작이 많았던 오프닝이었지만 무사히 넘어갔고 바로 1막 1장이 시작되었다. 등장하는 배우들 몇 마디 대사를 했는데 정말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고 이번 공연이 잘 흘러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연습이나 리허설 때는 하지 않았던 애드리브까지 절로 나왔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춤 동작에서도 함께하는 배우들과 눈빛을 교환하면서 교감했다. 한 배우님과 몰래 짠 대사로 관객들 뿐만 아니라 뒤에서 대기하던 다른 배우들까지 빵 터뜨렸을 때의 희열은 엄청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했던 그 어떤 무대보다도 본 공연에서의 무대가 가장 좋았다.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에너지도 가장 컸을뿐더러 리허설 때 불안했던 동작과 장면들까지 실수 없이 진행되었다.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로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처음 이 과정을 시작했을 때,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조명이 모두 켜졌을 때 뜨거운 환호와 관객들의 눈빛에 공연 뽕(?)을 맞을 거라는 연출 강사님이 얘기가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대를 무사히 마친 후련함과 관객들에 대한 감사함, 함께한 동료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 등 다양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무대 뒤편으로 퇴장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뮤지컬 공연이 끝이 났다.




Epilogue.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인해 연습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본 공연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항상 서로를 격려하고 과정에 열심히 참여한 멤버들 덕분인 것 같다. 지난 6개월의 과정에서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서로의 공간을 채워주는 것의 가치였다. 연출 강사님께서 무대 위 배우의 움직임에서 중요한 것은 발길이 옮겨진 뒤 빈 공간을 누군가가 채워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돌이켜보니 꼭 무대 위 동선에서 뿐만 아니라 지난 모든 과정에서 그러한 채움이 필요했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모두가 전문 배우가 아니었고 심지어 소정의 수강료를 부담했던 "취미" 활동이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쏟을 수 있는 에너지의 정도와 서로에게 기대하는 수준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충돌도 없이 서로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서 채워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모습에서 스스로의 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긍정의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부족한 부분도 열심히 채워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비록 공연은 막이 내렸지만 이번 기회로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막을 내리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연은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관계를 정리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삶이 있기에 잠시 한 눈 파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나는 것 또한 인연이기에 이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서로의 호흡도 좋았고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터라 누군가 한 눈 팔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 6개월 함께한 멤버들에게 감사하며 평범한 한 직장인의 뮤지컬 이야기도 이만 막을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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