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4막. 오디션과 우리에게 찾아온 위기
뮤지컬 과정을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한 점이 있었다. 언뜻 보기엔 직장인 동호회로 보이지만 어쨌든 이 과정은 소정의 수강료를 지급해야 되는 수업이다. 그리고 뮤지컬 작품에는 주연이 있고 서로 다른 비중의 조연들 그리고 앙상블이 있다.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수강료를 부담하는 와중에 배역은 어떠한 방식으로 정해지는지가 의문이었다. 처음에는 극단에서 전문적인 시각으로 정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궁금증은 수업 첫날에 바로 해결되었다.
수업 첫날 연출 강사님으로부터 배역은 오디션을 통해 정해진다는 안내를 받았다. 오디션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디션 시기는 첫 수업으로부터 한 달 정도 뒤였고, 그전에 대본을 받아 작품을 먼저 읽어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맡고 싶은 배역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미리 공지된 장면과 노래들 중 그 배역에 맡는 것을 준비하면 되었다. 그 외에 자유 노래와 춤도 오디션의 심사 대상이었다. 그리고 오디션의 심사는 연출 강사님 외에 극단 운영진들이 담당했다. 나에게 노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늘 하던 식으로 남들 앞에서 노래를 하면 될 뿐이었다. 장면 연기는 처음이었지만 준비만 제대로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춤이었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급하게 과정을 등록하다 보니 이 작품에서 춤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작품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 춤이 중요했기에 오디션 심사 요소에 춤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춤이라는 것을 제대로 춰본 적이 전혀 없었다. 친구들 축가 준비로 ‘율동’ 정도는 해봤지만 제대로 된 ‘춤’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춤이라곤 하지만 도무지 어떤 걸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라도 준비해야 되었기에 한 번쯤 배워보고 싶다고 느낀 춤이 없었나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그렇게 나온 후보군이 GD X TAEYANG의 <Good Boy>와 영화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과 미아의 탭댄스 그리고 신해철의 <그대에게>에 맞춘 응원 춤이었다.
<Good Boy>는 <MAMA 2014>에서의 두 아티스트의 무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예전 학교 무용과 새터(새내기 배움터)에서의 단체 군무 역시 멋있는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라랜드>의 탭댄스는 그야말로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그대에게>에 맞춘 응원 춤은 아주 짧게 대학교 응원단장님께 배운 경험이 있었다. 이 후보들 중 그나마 춤을 좀 추는 친구의 의견을 들어 <Good Boy>로 결정했다. 혼자서 동영상만 보고 춤을 따기는 어려웠고, 곡 선택에 의견을 준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난생처음으로 연습실이라는 공간을 대여하고 친구와 만나 동영상을 보면서 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워낙 뻣뻣했기 때문에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어설프게 보였다. 그래도 몇 시간 연습을 하니 동작들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오디션을 위한 춤 연습까지 마치고 머지않아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오디션 날 개인 발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행되었다. 공개 오디션이어서 더 민망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서로가 쑥스러운 상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때 옆에서 호응을 해주니 오히려 더 긴장이 덜 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공개로 진행했기 때문에 캐스팅 결과 발표가 났을 때 그 결과에 대해서도 훨씬 납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첫 오디션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비록 내가 원하던 배역을 맡지는 못했지만 오디션 당일 함께 즐겨준 극단원들 덕분에 나의 첫 오디션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 19의 확산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뮤지컬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매 수업과 연습마다 마스크를 꼭 썼고 체온 측정과 손 소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위기는 지난 8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8월 광화문 집회 발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대 2.5단계까지 격상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수업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웠다. 수업이 9월 한 달 동안 진행되지 못했고 공연은 10월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마음에 불안감만 가득해져 갔다. 다행히 10월 초 수업은 재개되었지만 한 달 동안 수업과 연습을 하지 못한 탓에 의욕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공연일자는 정해져 있었기에 다시 한번 열정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연이 예정된 공연장이 구립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는 공연장 사용이 불가능했다. 거리두기 단계가 언제 낮아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극단에서는 다른 공연장을 찾아 극단원들에게 공유했지만 해당 공연장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 극단원들 간의 의견이 분분했다. 관객으로 지인들을 초대할 텐데 거리두기를 하고 앉는다고 했을 때 공연장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터무니없이 적었고, 뿐만 아니라 단체 춤이 많은 우리 작품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무대의 크기가 많이 작아 보였다. 이 때문에 공연일자를 11월로 미뤄서라도 더 큰 공연장에서 무대를 올리자는 의견,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의견 그리고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작은 공연장이라도 예정대로 하자는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극적이게도 공연을 2주 앞둔 시점에서 거리두기가 2단계로 하향 조정되었고 기존 공연장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코로나 19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지금 상황을 보았을 때 만약에 그때 공연일자를 조정했다면 오히려 공연을 아예 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정말 다행이고 우리의 공연에 천운이 따라준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