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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Dec 27. 2020

『속죄(Atonement)』- 소녀의 오해가 부른 비극

(좌)『속죄』지은이 이언 매큐언, 옮긴이 한정아 (2003, 문학동네), (우) 『어톤먼트』감독 조 라이트 (2008)


들어가며...


    영화 『어톤먼트(Atonement)』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래되었다. 『원티드』, 『엑스맨』시리즈, 『23 아이덴티티(Split)』 등의 작품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한 영화이며,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요정같이 하얀 얼굴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촉촉한 눈빛으로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을 땐 무엇이 그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지 그리고 나라도 그의 감정을 보듬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했다. 영화의 스틸컷만으로도 전달되는 배우의 눈빛 속 감정이 잊히지 않았고, 언젠가 꼭 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는 키이라 나이틀리, 시얼샤 로넌,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같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을 실천하지는 못한 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네티즌이 작성한 책 추천글을 보고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유려한 문장과 방대한 서사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소설"이라는 작성자의 코멘트로 소개된 글을 통해 『속죄(Atonement)』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이 소설이 동명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즉시 서점으로 가서 책을 구입했고, 책을 다 읽은 후 『넷플릭스』를 통해 어렵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원작 도서가 있는 영화의 경우, 책을 읽고 내가 상상한 분위기와 장면을 영화로 확인하는 것을 선호한다. 다만, 이번의 경우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소설 『속죄』와 영화 『어톤먼트』그리고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 등에 대한 생각의 흐름을 풀어보겠다.


※ 본 글은 소설과 영화의 결말을 담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제임스 맥어보이 (로비 터너 役)




사죄(Apology)와 속죄(Atonement)


<1부>

    이야기는 1935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영국의 상류층인 탈리스 가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브리오니 탈리스(시얼샤 로넌)는 소설가를 꿈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열세 살의 소녀이다. 그녀의 언니인 세실리아 탈리스(키이라 나이틀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녀의 소꿉친구이자 탈리스 가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 터너(제임스 맥어보이) 역시 잠시 고향에 돌아왔다. 어느 뜨거운 여름 오후에 로비와 세실리아가 정원의 분수대 앞에서 마주친다.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의 감정과 이로 인해 발생한 실랑이에 세실리아의 꽃병이 부서져 분수대 물속으로 떨어지고, 그녀는 로비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분수대로 뛰어든다. 그리고 건물 위층 창가에서 상상력 풍부한 어린 브리오니가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그 날 탈리스 가에는 브리오니의 사촌언니인 롤라 퀸시와 쌍둥이 동생 잭슨과 피에로가 찾아온다. 그리고 또 다른 손님인 그녀의 오빠 레온과 그의 친구 폴 마셜이 찾아온다. 그날 저녁, 식사 도중 쌍둥이 형제가 실종되고 사람들은 그들을 찾으러 나간다. 아이들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그들의 누나인 롤라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고 브리오니는 로비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이 목격한 장면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까지 덧붙여 그를 강간범으로 지목한다. 탈리스 가의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브리오니의 말을 믿고 경찰마저도 그들의 진술에 로비를 바로 체포한다. 이로 인해 의대에 진학하려던 총명한 청년 로비와 로비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세실리아의 운명은 비극을 향해 치닫게 된다.

<2부>

    강간 혐의로 복역하던 로비는 징집되어 세계 2차 대전에 참여한다. 전황은 영국과 연합군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영국군은 프랑스에서 철수하기 위해 됭케르크에 모인다. 로비 역시 철수를 위해 두 명의 병사 네틀과 메이스와 함께 됭케르크로 향한다. 연합군이 마지노 선에서 퇴각하여 됭케르크까지 철수하는 모습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으며 폭격의 공포와 본국으로 떠날 배가 없어 절망에 처한 병사들이 저지르는 부도덕적인 집단적 폭력만 가득하다.

<3부>

    브리오니는 자신의 행동의 끔찍한 결과를 깨닫고 '속죄'하는 의미로 안락한 가정을 버리고 간호사로 지원한다. 그 과정에서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직시하고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돌보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려 애쓴다. 반면, 또 다른 피해자인 롤라는 자신을 강간하여 그 모든 비극을 몰고 온 장본인인 폴 마샬과 행복하게 결혼한다.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브리오니는 사죄를 하고 모든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세실리아를 찾아간다. 세실리아의 하숙집에는 로비가 함께 있었고 그녀가 저지른 엄청난 잘못도,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전쟁마저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소설가가 된 브리오니가 집필한 소설의 내용이고 현실에서 로비와 세실리아는 전쟁으로 인해 각자 다른 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생전에 재회할 수 없었고 브리오니의 소설에서나마 영원히 사랑할 수 있었다.


    제목이 뜻하는 바 그대로 소설과 영화는 주인공 브리오니 탈리스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속죄의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 자신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설을 통해 과거 그녀의 오해로 인해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바로 잡고 그녀의 소설에서나마 두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그렸다.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표현한 브리오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지만 그녀 실수의 영향에 고려했을 때 책임을 회피한 비겁하고 소극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행동은 속죄(Atonement)로만 머물며 끝내 사죄(Apology)가 될 순 없었다.


선입견


    이 작품의 비극은 브리오니의 오해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의 계급, 민족, 장애, 직업 등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작품 초반 롤라를 강간한 범인을 찾고 결국 로비가 억울하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계급에 대한 선입견을 볼 수 있다. 브리오니는 강간범으로 로비를 지목한다. 하지만, 브리오니가 진범의 모습을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목격했다는 점 그리고 평소 성실하고 겸손한 로비의 행실을 고려했을 때 브리오니의 진술만으로 그를 진범으로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로비가 탈리스 가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지만 가정부의 아들이며 그들 집안의 돈으로 고등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 간 장벽이 존재함을 알 수 있고 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급에 대한 선입견은 결정적인 순간 나타난다. 이 벽은 브리오니의 오해와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나고 세실리아를 제외한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브리오니의 생각에 동의한다. 마음 착한 로비가 쌍둥이 형제를 찾아왔음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의 벽은 더 이상 허물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의 피해자인 로비와 세실리아도 선입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들은 진범의 정체를 탈리스 가의 집사인 하드만 씨의 아들 대니 하드만이라고 생각한다.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도 교육 수준이 낮고 하찮은 직업을 가진 한 젊은이가 자신의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진범은 레온의 친구이자 상류층 사업가인 폴 마샬이었고, 브리오니에게 이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뿐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날 아무도 폴 마샬이 진범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는 계급이 빚어낸 거짓된 위엄과 품위가 그를 보호해주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2부에서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선입견의 참혹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전장 그 자체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나치 독일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다. 전쟁 그 자체도 참혹했지만 나치 독일이 벌인 행태는 더욱 잔혹했다. 특히, 홀로코스트라 불리며 유대인, 슬라브인, 장애인, 성소수자 및 전쟁 포로들을 학살한 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학살 그 자체도 참혹하지만 인간의 태생적 요소를 들어 특정 인간의 절멸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그 잔인함은 배가 된다. 특히, 그 과정에서 거짓된 정보로 혐오감을 조성하여 대중들을 선동하고, 이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선입견이라는 씨앗을 심는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 속에서 로비와 세실리아는 큰 고통을 입으며 결국에는 전쟁이 만들어낸 여러 행위들의 결과로 숨을 거둔다.


    결국 로비와 세실리아의 삶은 사람들 마음속 깊이 심어져 있는 선입견이라는 고장 난 나침반이 이끈 결과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는 어쩌면 자신들마저도 죄가 없는 사람을 오해한 것에 대한 대가일 수도 있다. 물론, 그 대가가 지나치게 참혹하지만 말이다.


책과 영화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있다. 똑같은 이야기의 전달이지만 책과 영화는 매체 특성의 차이로 인해 인간의 서로 다른 감각을 자극한다. 우리는 책을 통해 문장을 접하고 문장이 그리는 인물의 감정과 배경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의도한 감정이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독자의 이해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상상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반면, 영화는 영상 매체로 인물과 배경의 모습을 연출자의 시선으로 전달한다. 이 때문에 원작 도서가 있는 영화가 있는 경우, 독자의 상상력과 연출의 결과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문장이 전달하는 것보다는 영상이 전달하는 모습이 더 구체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에는 반대였다. 소설 속 인물들의 심리와 장면의 묘사가 섬세함이 그지없어 영화의 장면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를 들어 작품 초반 브리오니가 자신의 희곡 속 아라벨라 역할을 롤라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을 때 브리오니는 큰 좌절감과 동시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작가는 그 순간 브리오니의 감정을 "그 순간 자기 파멸적 동의가 주는 가학적인 흥분이 온몸으로 퍼지고, 이윽고 그것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와 풍선처럼 부풀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라고 표현한다. 브리오니의 심리묘사가 이토록 섬세하여 그녀가 느낀 '가학적인 흥분'이 얼마나 큰 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단 몇 초에 불과한 시간 동안 배우의 눈빛이나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을 이토록 구체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섬세한 묘사는 2부의 전쟁 장면에서 극치에 달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잔혹함과 포악함을 어찌나 섬세하게 묘사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인상을 찌푸렸다. 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어가고 절망에 처한 병사들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폭력적인 행위들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책을 읽으면서 거부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웬만한 전쟁 영화보다도 더 참혹하게 전쟁의 모습을 그린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기대 이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자신이 가진 매체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우리가 지금은 다녀올 수 없는 1930년대 영국의 모습을 특유의 색감으로 그려냈다. 저녁 식사 시간을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세실리아의 초록색 드레스도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책이 전달할 수 없는 소리, 즉 음악이라는 요소를 잘 활용했다. 인트로의 음악에서 이 이야기 자체가 브리오니의 소설이라는 점을 나타내듯 타자기를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프랑스 병사 뤽의 죽음 후에 브리오니와 그의 대화 속에서 언급된 드뷔시의 작품인 『달빛(Clair de Lune)』가 흘러나왔을 때는 기억을 잃은 병사의 순수한 그리움과 진정한 간호사의 역할을 조금 깨달은 브리오니의 감정이 교차하는 듯했다.


끝으로...


    이 작품의 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작품의 이야기와 반전으로 인해 찜찜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 외에도 섬세한 심리묘사와 전쟁 전·중·후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얘기한 이유로 책보다는 영화를 먼저 보기를 추천하며, 영화 『어톤먼트(Atonement)』는 넷플릭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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