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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Jan 10. 2021

라디오를 좋아하세요?

영화와 라디오

라디오를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했습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불가피하게 집콕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찾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주변 친구들이 보고 있을 때면 문득 라디오를 듣던 때가 떠오른다. 오늘날 <아프리카>, <트위치>, <유튜브 라이브>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기 전에 우리에게는 라디오가 있었다. 라디오 앞에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엽서 가득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꾸며놓은 형형색색의 색연필 장식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부모님의 영향과 아직까지 라디오가 많은 인기 얻고 있었던 시기로 자연스레 라디오와 가까워졌다.


    <친한 친구>, <텐텐클럽>, <푸른 밤> 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도 있었고 MP3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중화되기 이전에 최신 노래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도 라디오였다. 특히,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시간 참고서와 학습지 외에 나와 함께 해준 것은 라디오뿐이었다. 잠 못 드는 밤 나를 재워준 것도 라디오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라디오를 막 듣기 시작한 때 우연히 친구의 사연이 소개되는 것을 들은 순간은 라디오와의 인연을 계속하게 만든 기폭제가 되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라디오를 즐겨 듣지는 않지만 가끔 잠이 안 올 때면 홀리듯 라디오 어플을 켠다. 시대가 좋아져서 과거 프로그램의 특정 코너만을 골라 들을 수 있어 추억 속에 잠들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나에게 DJ의 목소리를 전달해준 그 시절 집집마다 있었던 개구리 라디오가 아른거린다. 이처럼 라디오는 크고 작게 나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손꼽히는 두 가지 추억이 있다.


개구리 라디오




영화와 라디오


    예전 MBC 라디오에는 심야 프로그램인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송시간이 몇 번 바뀌기는 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새벽 2시 또는 3시에 주로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이다. 아무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시간대는 아니지만 나의 경우 대학생 시절 올빼미 생활을 했던 탓에 종종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영화와 영화와 관련된 음악을 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중간중간 들을 수 있는 광고다. TV에서처럼 라디오에서도 광고를 들을 수 있고 광고 수입은 프로그램을 제작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TV와는 다르게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광고가 끼어들기 때문에 몰입도를 깨는 경향이 있다. 특히, 주요 시간대의 청취율이 높은 프로그램에는 광고가 많아 체감상 광고 시간이 전체 프로그램 시간의 10% 이상은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반대로 얘기하면 청취율이 낮은 프로그램에는 광고가 많이 들어오지 않고 이는 내가 심야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제작사 입장에서는 반기지 않는 상황이겠지만.


    이런 심야 프로그램, 더군다나 <영화음악>에도 광고는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프로그램의 것과는 달랐다. 바로 영화 광고였다. 보통 영화 예고편이라고 하면 영상이 익숙하지만 <영화음악>이 하는 시간에는 영화 예고편을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다만, 음성으로만 내용을 전달해야 되기 때문에 영상과는 다른 느낌과 정보가 전해진다. 영상 예고편에서는 배우들의 모습이나 장면 연출 등이 주가 된다면 음성 예고편에서는 영화의 연출진이나 줄거리 등이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제공되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영화에 대한 흥미도가 커지고 상상력이 커져간다. 그리고 내가 <영화음악>을 즐겨 듣던 당시 매일같이 나오던 광고는 바로 영화 <어바웃 타임>의 예고편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장면이 음성으로만 전달되었고 그 탓에 배우들의 대사는 영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한국어로 녹음된 영화에 대한 설명이 오버랩되어 전달되었다. 이 때문에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제작진의 작품이라는 것과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외에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웠다. 출연하는 배우가 누구인지도 배경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작품들의 제작진이라는 점과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영화에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마침 이 영화에 대한 개봉 전 시사회 이벤트가 있었고 잠깐 시간을 내어 사연을 적어 보냈다. 사실, 청취자가 많지 않은 시간대이기 때문에 당첨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거란 기대감이 나를 부추긴 것도 있었다.


    나의 기대에 부합하듯 어렵지 않게 개봉 전 시사회 티켓에 당첨되었고,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시사회가 진행된 용산 CGV로 찾아갔다. 아직까지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사회로 남아 있는 이 영화는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에 단순한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작진의 이전 작품인 <노팅힐>과 <러브 액츄얼리>처럼.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영화는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가 전해준 이야기 자체도 감동적이지만 누구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접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치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나는 남들과는 더 빠른 미래를 보고 온 기분이었다. 라디오가 선물해준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추억이다.


<영화음악>과 <어바웃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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