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안’, ‘사’, ‘존’, ‘자’
이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버린 다섯 글자이다.
잠시 공인노무사 준비를 할 때 외운 것으로 ‘매슬로의 욕구단계’의 각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앞 글자를 따서 암기하는 것이 쉽다는 선배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굳이 전체를 다 외우겠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굴복하고 선배의 요령을 택했다.
덕분인지 무릎의 무조건 반사처럼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이라고 누군가가 내뱉으면 ‘생안사존자’가 절로 나온다.
다만 문제는 가끔 이 ‘생안사존자’ 뒤에 오는 말들이 헷갈릴 때가 있고 한참이나 생각해야 그 뒷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개월을 돌이켜보면 참 살만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대단히 풍족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모으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 칼퇴가 일상이 되었고 덕분에 저녁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있다.
하지만 뭔가 가슴 한편이 허전한 건 왜일까?
아무래도 생존 이상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막 취업을 했을 때에는 새로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애썼고 덕분에 수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구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나날이 나의 삶, 생존의 질은 좋아졌다.
하지만 생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말로 하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선배들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면 반응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래, 그래도 의미 있게 일을 해야지’라는 반응과 ‘굳이 일에서 의미를 찾지 마’라는 반응.
두 가지 생각 모두 공감이 된다.
하루 8시간 이상의 직장에서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일을 통해 얻은 자원으로 나머지 16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어느 쪽에 더 공감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하는 시간을 햄스터의 쳇바퀴처럼 보내고 싶지는 않다.
대단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존 이상의 것을 찾아보고 싶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의지가 마음속에 강렬히 존재한다.
일, 직업, 커리어, 어떤 단어가 되었든 그 속에서 방랑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생’, ‘안’, ‘사’, ‘존’, ‘자’
이렇게만 보면 생존 너머에는 고작 네 글자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숨겨진 단어들이 있다.
생존에서 자아실현까지 적게는 세 글자, 많게는 수십 글자를 넘어야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요령보다 정도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