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행의 주된 이동수단은 자동차였다. 사실 처음부터 자동차를 빌려 여행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럽여행을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기차로 이동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스위스에서 알프스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드라이브라는 것을 보고 렌터카가 우리의 선택지 중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는 스위스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비용이 적지 않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우리의 여정 상 렌터카를 대여한 곳으로 다시 반납하기 위해 돌아가는 것은 동선 낭비였다. 하지만, 이대로 알프스의 절경을 포기하기는 아쉬워 이리저리로 정보를 찾아보니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정보를 접했다. 그리고 우리가 계획한 모든 나라를 기차로 이동하는 것과 독일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비용, 여행지를 일주했을 때의 기름값 그리고 렌터카를 이용했을 때의 편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니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나름 경제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럽 여행은 렌터카 일주 여행으로 정해졌다.
외국에서 렌터카를 빌리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를 얻었다. 결국 허츠에서 렌터카를 빌리기로 결정했고, 독일의 많은 도시 중 암스테르담에서 이동이 용이한 쾰른에서 대여와 반납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결정해야 했던 것은 바로 보험의 수준이었다. 렌터카에 적용되는 보험의 종류에 따라 비용의 차이가 꽤 컸고, 다들 운전에 자신이 있었던 터라 굳이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나를 제외한 3명의 친구는 모두 운전병 출신이었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의 운전이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보험을 드는 것으로 결정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쾰른이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그저 지나가는 도시였다. 쾰른 대성당 등 관광지로도 무척 유명한 곳이지만 우린 쾰른에 오래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짧은 하루를 보내고 기차를 타고 쾰른역으로 이동했다. 유럽의 기차는 꽤 마음에 들었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용공간도 있었지만, 일행들과 오순도순 이용할 수 있는 개인실 형태의 좌석도 있었다. 우리는 4인만 이용하는 개인실에 자리를 잡았고 미리 준비해온 트럼프로 여러 게임을 하며 즐겁게 이동했다. 마치 대학교 MT로 경춘선을 타고 가평으로 이동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높은 산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음을 탁 트이게 했고, 활짝 열린 마음속은 빠르게 지나가는 들판의 녹음과 작은 마을들의 정취가 만들어낸 낯선 곳의 설렘으로 가득 찼다.
쾰른역에 도착하여 한 눈 팔 사이도 없이 바로 허츠 렌터카 영업소로 향했다. 다행히 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많은 짐을 가지고 이동하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영업소에 도착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간소한 인수절차를 거친 뒤에 차량이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무척이나 반갑게도 한식당을 발견했다. 한글로 된 간판이 반가웠지만, 아침으로 이미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었고 아직은 여행 초기라 한식이 그다지 당기지 않았기에 그냥 지나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식당도 기억해두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우리 차를 확인해보니 밴츠 E클래스였다. 역시 독일은 자동차의 나라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이들이 탐내는 외제차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저 '소나타' 정도의 차량이구나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일반 승용차 형태가 아니라 왜건 형태의 차량이었다. 유럽에서 운전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한 가지는 왜건 차량이 무척 많았다는 것이다. 아마 이 곳은 도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차량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앞으로 약 20일간 우리와 함께할 차량이었기 때문에 다 함께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렌터카 여행에 시동을 걸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프랑크푸르트.
우리 여행 계획에서 독일은 정말 지나가는 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크게 알아본 곳도 없었다. 다만, 쾰른에서 스위스로 바로 가기 위해서는 장시간 동안 운전을 해야 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마침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거기에서 하룻밤을 묶기로 했다. 내가 아는 프랑크푸르트는 축구의 도시였다.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차범근 선수가 몸 담았던 팀 중 하나가 프랑크푸르트였고 그곳에서 레전드로 기억이 되는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축구팬으로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외에도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독일의 위대한 문학가 괴테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프랑크푸르트였다. 여행 이전부터 파우스트를 몇 번이나 펼쳤지만 여전히 아직까지도 완독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들어 괴테 동상 앞에서 그와의 추억을 남겼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고 다른 유럽 나라보다 훨씬 현대적이었다. 이전에 다녀온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는 높은 빌딩을 찾아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독일에서는 어렵지 않게 현대식 건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군데군데 위치한 오래된 고택이 전통적인 인상도 주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현대적인 도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빌딩 숲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오래된 고궁을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서울과 닮아있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오래된 건축물 중 뢰머광장에 있는 목조 건물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옛 시청사가 있었던 장소이며, 도시의 주요한 행사가 있을 때 중심지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시민들이 가볍게 모여 만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는 이 곳은 사람들의 활기와 오래된 건축물의 고풍스러운 모습이 만나 오묘한 느낌을 주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프랑크푸르트가 79-80 시즌 UEFA컵에서 우승한 뒤 퍼레이드를 한 곳, 그리고 차범근 선수가 우승컵을 높게 들어 올린 곳도 바로 이 광장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카페 투어는 계속되었다. 우리의 선택은 바커스 커피(Wacker's Kaffee)였다. 이 곳은 1914년부터 전통을 지켜온 프랑크푸르트의 대표적인 카페이며, 원두의 수입부터 블렌딩, 로스팅까지 직접 하여 나름의 스페셜리티를 간직해온 곳이다. 매장의 좌석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유럽에서의 커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빠르게 한 잔 하고 가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는 거의 모든 카페에서 두 잔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와 카페라테. 사실 커피의 맛을 깊이 음미하면서 마시진 않았기 때문에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북적북적하게 모여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시민들 사이에서 커피를 함께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에 커피가 아니라 홍차를 좋아한다면 로네펠트를 들리기를 추천한다. 주변에 홍차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어 해외에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유명한 홍차 브랜드를 찾아본다. 로네펠트는 1823년에 설립된 독일의 홍차 회사로 그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차 브랜드로 성장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도 로네펠트 티하우스를 방문할 수 있지만, 현지 티하우스에서 시음 및 시향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홍차를 추천받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또한, 로네펠트의 본사도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나도 백화점에 있는 로네펠트 매장에 들러 지인의 취향을 고려한 홍차를 몇 가지 추천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선물은 성공적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저녁식사는 현지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추천한 맛집에서 가졌다. 식당의 이름은 파울라너(Paulaner am Dom)였고, 맥주 브랜드 파울라너와 무슨 관계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음식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이곳의 학센은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학센이었고 파울라너 맥주도 굉장히 맛있었다. 현지 맛집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국어는 찾아볼 수도 없었을뿐더러, 독일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디자인으로 인해 이국적인 느낌이 더 강해졌다. 학센뿐만 아니라 슈니첼도 먹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먹었던 오리지널 슈니첼보다는 훨씬 입맛에 맞았다. 오리지널 슈니첼은 레몬즙 이외에는 소스가 전혀 없어 심심한 느낌이었지만, 이 곳의 슈니첼은 버섯 소스가 가미되어 좀 더 돈가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훌륭한 식사를 마치고, 광장에서 따뜻한 뱅쇼를 마시며 새롭게 만난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긴 얘기를 나누었다. 날은 비록 차가웠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