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만 넘어가면

일상을 다르게 볼 때 찾아온 행운

by Bro park

서울 동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연고도 없던 은평구로 온 지 벌써 4년이 흘렸다. 내가 사는 곳은 은평구 연신내. 이곳에 정착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반려견 썬더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자!


지하철역까지 제법 걸어야 하고,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입지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선택한 건 집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과, 도서관 뒤로 이어진 작은 뒷산 때문이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 발길이 뜸한 그 산.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작년부터 우리의 단골 산책 코스였던 뒷산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 특성 때문인지 '무장애 숲길'을 조성한다고 했다. 조그만 야산에 공사 차량과 인부들이 오가며 한동안 분주함이 계속되었다.


솔직히 처음엔 달갑지 않았다. 나만의 산책 코스를 빼앗기는 것 같아 서운했고, 산에 사는 동식물들에게 몹쓸짓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뾰족한 시선으로 공사 현장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공사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 완만한 경사의 데크가 산 전체에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길이라 전체가 오르막인데도 '무장애 숲길'이라는 이름답게 휠체어 이용자도 올 수 있을 정도로 설계되어 있어서인지, 신기하게도 숨이 차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길을 걸어보니 기존에 자라고 있던 나무들을 피해 길을 만들기 위해 데크에 구멍을 뚫고, 빈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하니 관리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예전에는 들어본 적 없던 새들의 지저귐과 처음 보는 식물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좋은 경험을 하다보니 뾰족했던 시선이 조금은 둥글게 둥글에 변해갔다.


이름도 없는 동네 뒷산은 의외로 올라갈 수 있는 루트가 다양했다. 내가 몇 년간 다닌 길은 우리 집 쪽에서 연결되는 길(A루트라고 하자)이었는데, A루트만 해도 5~6군데로 길이 이어져 있어서 반대편 길로 가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언덕 너머로 연결된 긴 데크길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배도 좀 불렀던 터라 '안 가본 길로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이 길이 정말 우리 동네 뒷산에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무성하고 새소리가 숲을 가득 채워, 마치 휴양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날씨가 더웠는데 무성한 나무가 만든 그늘 덕분에 시원하게 산책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우와….."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너무나 기분 좋은 점심시간이었다.


언덕 하나 넘어온 것뿐인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니… 오늘 우연히 이 길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나는 이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이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여러 이유로 넘지 못했던, 넘지 않았던 내 인생의 언덕들이 생각났다. 눈앞에 있는 것들, 경험했던 것들에 익숙해져 미처 가지 않았던 그 언덕들 말이다.

오늘의 생각을 글로 남기며, 나는 앞으로 언덕을 만날 때마다 다른 마음을 갖게 될 것 같다. 이 언덕 너머에 예상치 못한 멋진 경험이 나를 기다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언덕 너머에 있는 게 장애물이라 할지라도, 언덕을 넘어가는 나의 마음은 기대감에 부풀어 행복할 것 같다.


언덕만 넘어가면…

언덕만 넘어가면 예상치 못한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어폰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