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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r 02. 2021

21. 개강하다

종강이 언제더라

 인생 첫 개강. 대학생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날에 내가 가장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 인터넷 연결 상태라는 건, 상상한 것 이상으로 꽤나 처참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은 증발한 지 오래, 고등학생 때 개학을 앞둔 것만도 못한 기분으로 보낸 첫 개강날은 정말이지 골 때리는 하루였다.


 우선 수업을 어디서 듣는지, 어떻게 듣는지, 정말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몸소 느끼며 물어물어 강의 사이트를 세팅한 게 어제 일. 자기 직전까지도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지며 오늘 준비해야 할 것들을 곱씹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침부터 모든 게 삐걱거렸다.


 기숙사 식사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게 첫 번째였다. 적어도 3일 전에 예약을 해둬야 하는 것을 까먹고 방치한 탓에 오늘내일을 꼬박 굶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밖에 나가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난생처음 맞는 온라인 개강에 정신이 없는 새내기에게 여유로운 외식은 사치였다. 점심까지 버티다가 급히 편의점으로 외출해 삼각김밥을 입에 욱여넣고, 내일을 위한 빵과 두유를 사고 돌아올 즈음 이미 멘털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엔 쭉 강의를 들었다. 대부분의 강의가 OT로 진행되었지만,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앉아 듣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을 뿐이었다. 몇 달 수업을 듣지 않았다고 이렇게나 집중력이 떨어질 일인가, 하는 억울함이 올라올 만큼 교수님의 말씀이 귓등으로 스치지 않게 하는 것마저 힘에 부쳤다. 나를 쳐다보시는지 아닌지도 모를 교수님을 향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1시간가량 이어지는 OT를 들으며 얻은 건 뻐근 거리는 목과 지끈거리는 머리였다.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며 줌 실시간 강의가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얻은 한숨은 덤이다.


 (이후로도 몇 시간을 녹화 강의와 당일 과제에 시달리다 지금은 자리에 주저앉아 오늘치 글을 쓰고 있다. 하루에 2만 보를 넘게 걸었던 날보다 몸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대학생들이 개강에 웃고 종강에 웃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개강의 여파에 이렇게 통곡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게 개강은 대학생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밈에서 유독 혹독하게 다뤄지는 대상일 뿐이었다. 그냥 보고 웃고 넘어가는 게 다였는데.. 이렇게 첫날부터 영혼이 탈곡될 줄 알았다면 개강 일주일 전부터 죽은 듯이 잠만 잤을 것이다.


 그래, 변명해보자면 아직 내 몸이 대외적으로 공부를 하고 각종 활동을 할 만큼 활성화되지 않았다. 몇 개월 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데다가, 수험 생활 이후 공부를 놓은 지도 벌써 몇 달 째다. 몸도 머리도 굳어버린 상태인데 대학의 고등 지식이 머리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물론 이렇게 투정을 해도 이제껏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벼르고 있던 수업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겠지. 결국 버텨야 하는 것은 나고, 이 피곤한 하루를 지탱하는 것도 나 자신뿐인 거다. 삐걱이는 낯선 일상을 부여잡고, 빛나는 종강이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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