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Mar 15. 2021

쪽글 1. 바쁜 하루의 허망함

무능해지는 기분

 지금 시각은 8시 41분. 물론 오후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데 오늘도 글을 써서 올려야 한다는 다급함이 지친 몸을 일으켰다. 동아리 오디션을 위해 급하게 연습실을 예약하고 목이 터져라 연습을 하고 돌아온 것이 약 15분 전의 일이다. 뻔한 변명 같지만, 오늘은 정말 많이 바빴다. 9시 반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해 4시까지 서로 다른 과제와 강의를 몰아 듣고, 그 이후부터는 오디션 사항을 살피며 연습실 예약에 집중했다. 사소한 실수들이 겹쳐 피로가 쌓이고, 6시부터 8시까지 연습에 매진한 뒤 겨우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방전 상태였다. 왜인지 운까지 따라주지 않아 중식도, 석식도 먹지 못하고 대강 빵으로 한 끼니를 때운 지금의 상태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하루를 바쁘게 보낸 후 사람들은 후련함을 느낀다던데, 나는 왜 이렇게 허망한 기분인 건지. 그건 아마도 내 할 일이 모두 끝나지 않아서겠지. 까딱하면 잠들 수 있는 몸상태를 이끌고 나는 오늘도 글을 올려야 하고,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는 세탁기에 돌려진 빨래를 널어야 한다. 그 외에 여남은 계획들은 모른 척 덮어놓고 하루의 막을 내릴까 한다. 평소와 같은 긴 글은 쓸 수 없어 한 손으로 다 가릴 수 있을 법 한 짧은 글을 쓰고 있지만 그 한 줌 글도 힘겨워 버벅거리는 내 모양새가 퍽 안쓰럽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원하던 목표도 채우지 못한 채 하루는 흘러버렸는데, 무책임하다 나를 책망하기에는 한 뼘 여유도 부리지 않고 살아온 하루였어서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인다. 괜찮다 털어버리기엔 내 마음을 추스를 체력이 남지 않아, 그냥 이 허무감 위에 나를 얹고 남은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려 한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지친 소망이 쓰린 속을 간질인다.


 아_ 추신. 그리고 앞으로 약 열흘 가량은 이런 쪽글이 올라올 예정이다. 강의와 과제, 연습에 치여 정상적인 연재 주기를 맞추기가 심히 버겁다. 나와의 타협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이 면목 없는 알림이 더욱 죄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인연들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님을, 정말 가진 것 없는 처지에서도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한다. 나의 빛나는 하루와 볼품없는 하루를 모두 함께하는, 매번 이곳을 찾아주는 당신의 방문에 온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26. 하고 싶은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