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Mar 29. 2021

28. 공백을 끊어내다

녹슬어버린 머리를 부여잡고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 앱을 켰다. 또 누군가 나의 글에 다녀갔다는 파란 점이 나를 반기고, 23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멈춰버린 글이 눈길을 빼앗는다. 나름 꾸준히 글을 써 왔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현실에 치이는 사이 나도 모르게 글을 잊고 있었다. 이리 놓기 쉬운 것이었나, 하루하루 연재 주기를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장을 써 내려갔던 날들이 떠올라 잠시의 공백이 새삼 씁쓸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제는 그 공백을 끊어내야 하기에 감상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백지의 화면과 마주하자, 마치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이 그랬듯 막연한 두려움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뭘 써야 하지.


 당혹스럽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한 머릿속의 공정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6일간의 쉼이 있었다지만 이렇게까지 글이 떠오르지 않을 줄이야. 잠시 글을 등한시한 것의 대가라기엔 너무한 거 아닌가. 그 시간 동안 온전히 휴식을 취한 것도 아닌데 이런 결과라니 조금 억울하다.


 아, 차라리 그 공백에 대해 얘기해보는 편이 나을까. 모처럼 글의 공백을 끊어내는 순간에 그 공백에 대해 얘기해보는 편도 꽤 의미가 있겠다.


 글을 쉬게 된 가장 큰 계기. '하고 싶은 일'이라는 편에서 언급한 바 있듯, 최근 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학교의 뮤지컬 동아리에 배우로 지원하기 위해 지정된 노래와 대사를 연습했던 것이 그것이다. 기초 중의 기초도 없는 생 초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유튜브의 영상을 뒤져가며 귀동냥을 하는 것뿐이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방법 선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무튼 하루의 빈 시간을 연습실에서 쓰고 기숙사에 도착하고 나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힘이 들었다. 나를 향한 끝없는 불확신과 싸우며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나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포기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하찮은 나는 간절했고, 연습을 꾸준히 이어가 결국은 오디션 날에 이르렀다. 그날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덜덜 떨렸다고만 해두겠다. 노래와 연기를 끝내고 면접이 이루어질 때쯤에야 긴장이 서서히 풀렸고, 모든 게 끝나고 난 뒤에는 자리에 주저앉아 몇 분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후련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붙더라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얘진 머릿속을 붙잡고 집까지 오는 길은 유난히 피곤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나는 동아리에 합격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 나는 뮤지컬을 할 수 있다. 몇 년이고 미뤄온 일을 이제야 시작하는 기분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확신이 없고 오히려 걱정과 부담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이미 닥치지 않은 불행을 미리 사서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덮어두는 중이다.


 그리고 뮤지컬에 관한 것을 제외하면 그동안의 내 일상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과제. 얼마나 과제에 시달렸는가 하면, 공백 기간 동안의 내 상태는 앞에 '과제 때문에'를 붙이면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과제 때문에 굉장히 피곤하다. 과제 때문에 늦게 자서 졸리다. 과제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물론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어제는 전공 과제 하나를, 오늘은 필수 교양의 동영상 과제 하나를 업로드했다. 1분 46초짜리 영상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들였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탄다. 물론 아직도 끝내지 못한 과제가 많다. 나의 1학기 학점을 구성하는 강의들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과제와 시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차마 인정할 수 없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요즘이다.


 이상으로 나의 공백의 내벽을 담아봤다. 글을 올리지 못한 시간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으로 보인다면 그렇게 봐도 좋다. 이제까지의 공백을 끊어내는 데에만 만족하며 써 내려간 글이기에 어떻게 비칠지는 그리 고려하지 않았다. 오늘의 글은 조용했던 시간의 근황이자 오랜만에 만나는 독자들에 대한 인사에 가깝다.  참 오랜만에 글로 찾아올 수 있어 기쁘고, 또 반갑다. 앞으로는 쉬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만나는 시간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쪽글 4. 걱정스러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