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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Apr 02. 2021

30. 발버둥 치기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괜히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버리는 때가. 특히 나는 말에서 그런 실수가 잦다. 대화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얘기를 꺼내거나,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꺼내며 대화의 흐름을 엇나가게 만들곤 한다. 문제는 여기서 이 실수를 가장 예민하고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나는 하얘진 머리를 부여잡고, 버벅거리는 입으로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애를 쓴다. 실제론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작은 실수인 경우가 다반사지만, 그 사소함에도 나는 홀로 크게 요동친다.


 작은 말을 무마하기 위해 다급히 문장을 갖다 붙이는 것. 사실 이는 작게 떨어진 불꽃에 지레 놀라 온 수문을 열어버리는 꼴이라, 불은 쉽게 꺼지지만 나중에는 그 불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꺼진 불에 안심하기도 전에 가슴속에 들어찬 물은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밀어붙인다. 그런 상황에서 내색하지 않고 물바다가 된 마음을 홀로 정리하며 멀쩡한 척 대화를 이어가는 심정은 꽤나 처참하다.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발버둥 친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그래,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살면서 말실수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시피 할 것이고,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꼭 실수를 하게 되는 법이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실수 없는 완벽한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내 불만은 굳이, 꼭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실수를 는 거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 따위 예 저녁에 포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연으로 남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오래 만난 친구라던가 가족의 경우에는 그리 걱정을 하진 않는다. 그들은 이미 내가 바닥을 치는 순간을 목격했고, 그 바닥에서도 함께 있어준 사람들이니 말이다. 내가 앞에서 무슨 실수를 하던 웃어넘길 수 있는 가벼움을 지니기까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시간을 보낸 이들은 이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주로 드문드문 인연이 닿는 학교 친구라던가, 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동기나 선배, 우연한 기회로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 등에 대한 것이다. 나를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이들, 앞으로의 만남을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또한 이들은 내가 마음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이유 아래 내 인연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 그 이유는 인상이 좋아서, 첫눈에 반해서, 취향이 비슷해서,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해서 등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유들은 꼭 명확해야 한다거나 논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마 그러기도 힘들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다는데, 거기에 이유를 붙이려면 어떻게 만들어서라도 붙일 테니까.


 그럼 그다음은 뭘까. 이 사람이 마음에 들고 관계를 쌓고 싶은데 당최 뭘 해야 할까. 대화를 이어가던 만남을 약속하던 일부로라도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의문에 대한 멋진 답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알고 있었다면 침묵을 메꾸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식의 실수는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밤마다 이불 킥을 날리는 흑역사들을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신 보지 못 할지도 모를 스치는 인연 앞에서 조급해지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길은 있긴 한 걸까.


 그 방법을 모르기에 나는 오늘도 발버둥을 친다. 아, 언젠가 내가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상처를 받고 나면 그때는 애써 발버둥 치지 않고 좋게 인연을 흘려보내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그때가 기다려지기는 하지만 아직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인연을 만들기 위해 나를 작게 만드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 그저 자꾸만 무너지는 마음의 둑을 조금 더 견고하게 세우고, 큰 불로 번지지 않게 진압은 했지 않냐며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사소하고 작았던 오늘의 내게 분노하지 않고 다만 측은히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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