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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Apr 04. 2021

31. 오타

나중에서야 눈에 밟히는 것들

 나는 늘봄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늘봄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 중 한 명이다. 스스로 자신의 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자아도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내가 시간에 꼽아 놓은 쉼표들을 되짚는 게 좋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남는다는 건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나서라도 행복한 일이. 이야기가 잠시 다른 길로 빠졌는데, 돌아오자면 나는 내 글을 자주 읽는 편이다. 특히 누군가 내 글을 읽었다는 알람이 울리면 나도 그 글에 들어가 그때의 감상을 다시 곱씹곤 한다. 그런데 가끔, 그 감상을 와장창 깨뜨리는 것이 있다. 눈에 들어오자마자 단박에 허를 찔러 나를 당황시킨다. 제목을 보고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오타다.


 왜 쓸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나중에는 그렇게 쉽게 눈에 밟히는지. 나름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문장을 쓰고 끝으로는 '맞춤법 검사'라는 현대 문물의 힘까지 빌리고 있건만 완성된 글에는 꼭 하나 둘 오타가 남는다. 물론 그 글이 서랍에 머물러있는 시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명백한 실수지만 나만 아는 나의 사소한 실수라면 난 모르는 척 용인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발행된 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행되어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된 글에 오타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있어 정돈되지 않은 방을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만큼의 충격을 안겨준다. 내 글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허물을 보였다는 아찔한 충격은 내게 화가 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내 평정심을 뒤흔들기엔 충분하다.


 다만 오타를 고치다 보면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눈에 밟히는 오타들은 글뿐만 아니라 내 삶 속에도 가득한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망각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운 좋게 잊을 수 있었던 수많은 오탈자들. 아마 삶 속의 오타들을 모두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면 나는 매일 밤 이불을 차며 흑역사를 곱씹다 아침을 맞이할 것 같다. 지금도 잊지 못한 것들이 한가득인데 여기서 더더욱 예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어딘가로 숨어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문은 얼마나 편리한가. 나중에라도 오타를 발견하면 지울 수 있고, 언제든 수정을 거쳐 더욱 완벽한 글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나온 이상 절대 수정할 수 없는 삶과는 사뭇 다른 특성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 편리함은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 쓴 실수투성이 글을 어른이 되어 완벽한 문장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이미 그 글은 과거의 추억을 잃어버린다. 더욱 형식적으로 완벽해질 수는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상실하게 된다. 이 맥락에서 소심하게 장담하건대, 삶은 수정할수록 퇴색될 것이다.


 오타는 한눈에 들어오고, 한 번 밟히고 나서는 잘 잊히지 않는다. 그처럼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삶의 오타들은 이미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삶이 개개인으로 구별되는 이유 또한 각자가 그런 오타들에 의해 굴곡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굴곡은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나'를 정의하는 조각이 되어 남는다. 그 조각에 대해선 아무도 옳고 그름을 일반화할 수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에 의미를 남긴다는데 누가 이의를 걸 수 있을까.


 만일 모두가 아무런 사건 없이 수평선 같은 삶을 살아왔다면 서로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은 굉장히 단조로워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낭만적으로 말하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끼워 맞출 단면조차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았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다 보니 새삼 지울 수 없는 삶의 실수들에게 관대할 수 있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의 내가 좋고 싫음을 따져봤자 이미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인데 뭐 어쩌겠나, 싶은 근거 없는 배짱이 마음을 메운다.


 지울 수 없는 시간의 오타로 만들어진 지금의 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당연함에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생각의 끝에서 얻은 이름 모를 용기에 힘입어, 언젠가 잠을 설치며 밤을 새우게 만들었던 일들을 무심히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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