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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Apr 30. 2021

40. 그리워하다

그리워할 만큼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는 잘 꺼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사실 친구라기 보단 내가 일방적으로 기억하려 애쓰는 그런 스쳐가는 인연 중 한 명이라고 해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만큼 오래 사귀지도 친밀하지도 못한 관계였으니 딱히 이의는 없다. 다만 오늘은 그 친구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로 글의 서두를 열어볼까 한다.


 그 친구는 종종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그것은 사람이 되기도 했고, 지나간 추억이 되기도 했다. 물론 누구나 그리워하는 것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산다지만 뭐랄까 그 친구의 그리움은 꽤나 뼈아픈 느낌이었다. 그 친구와 많은 것을 공유하지 않은, 말 그대로 타인이었던 나조차도 잠시 마음이 일렁일 정도였다. 그립다, 보고 싶다. 쉽게 휘발되지 않는 예의 그 말들이 눌어붙어 있던 그 친구의 그리움을 목격하며 나는 약간의 부러움을 삼켜냈던 것 같다.


 그리움을 부러워하다니, 참 찌질한 모양새다. 남이 보면 부러워할 게 없어 그런 걸 부러워하느냐는 핀잔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래서 나도 그 감정에 대해 한 번도 입에 올려본 적이 없다. 내 부러움에 대한 이렇다 할  떳떳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그 친구의 게시물들을 보다 우연히 그 감정의 근원을 마주했다. 나는 이렇게 무언가를 그리워해 본 적이 있던가?


 무언가가 그리울 만큼 사랑해본 적이 있다는 것. 사라져 버린 무언가를 계속해서 그리워할 만큼 그 애정에 확신이 있다는 것. 그게 참 빛나 보였던 것 같다. 비록 그 그리움의 바닥에는 슬픔이 깔려있지만, 그걸 쥐고서라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의 모습에선 말로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느껴졌다. 사랑이라기엔 담담하나 책임이라기엔 애틋한, 나는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가.


 그리워할 것이 없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나는 이것이 운이 좋지만 씁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글이니 내 이야기로 예를 들자면 나는 아직 소중한 인연을 죽음으로 인해 잃어본 적이 없다. 가족도, 친구도, 연이 닿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날 수 있는 공간에 있다. 이런 점에서 아직 나는 운이 좋다. 성인이라는 분기점을 넘길 때까지 죽음에 의한 그리움을 쥐어 본 적이 없는 셈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사의 문제를 넘어 생각해보면 그리워할 것이 없다는 점은 단순히 운이 좋다는 범주에 끼지 못한다.


  그리울 존재가 없음을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마음을 다해 좋아해 본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온 마음을 쏟아냈기에 돌아보며 그리워할 일이 없다는 성숙한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그 경우에 속하지 못한다. 항상 어중간하게 애정을 들이다가 어느새 흐지부지 잃어버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움을 빚을 만큼 열심히 사랑을 쏟지도 못했을뿐더러 잃은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그리워할 깜냥도 되지 않았다.


 그냥 나는 뭐랄까, 내 곁에 영원히 있을 것은 없다며 포기와 끝을 염두에 두는 것이 기본값인 사람이었다. 어차피 사라질 텐데, 라는 마음. 그렇게 포기하고 단념하고 잊어온 것들을 세어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 사람, 존경하는 사람, 이뤄보고 싶은 꿈이나 도전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필요한, 한편으로는 잃는데 필요한 용기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사람에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래서일까 온 마음을 다해 쫓아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내겐 유독 빛나 보인다.


***


 그리움은 무언가를 마음에 품었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그 무언가와 멀어졌을 때 비로소 스스로가 쏟은 마음의 크기를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사무치게 그리운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에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그리움은 당신이 쏟은 진심의 잔상이고, 당신이 그만큼의 사랑을 쏟은 무언가는 당신의 슬픔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잊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그리움은 할 일을 다했다.

 이 글이 훗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된 나에게 오만으로 비춰지진 않기를, 그때의 내 그리움 또한 위안받을 수 있는 글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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