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달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내겐 두꺼워 폭닥한 수건이 7개, 얇아서 후들거리는 수건이 4개 있다. 얇은 수건은 싼값에 홀려 잘못 산 것. 나는 얇은 수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세수만 해도 금방 모두 젖어버리는 얇은 수건은 딱히 물기를 견딜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두꺼운 수건은 온몸의 물기를 닦아도 여전히 폭닥 거려 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빨래를 한다. 다 마른 수건을 고이 갠다. 연속으로 얇은 수건을 쓰기 싫은 맘에 두꺼운 수건 사이사이로 얇은 수건을 퐁당퐁당 쌓는다. 그렇게 탑처럼 쌓아 올린 수건을 욕실 수납장에 넣는다.
그러면 나름의 계획하에 월요일엔 두꺼운 수건, 화요일엔 얇은 수건, 수요일과 목요일엔 두꺼운 수건, 금요일엔 또다시 얇은 수건을 쓰게 된다. 얇은 수건을 이틀 연속 쓸 일은 없다. 그것은 나의 작은 행복을 위한 집안일 루틴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면 인생을 설계할 때 두꺼운 수건과 얇은 수건을 서로의 사이에 넣듯, 행복과 불행도 그렇게 겹겹이 쌓아 올린 거였으면 좋겠다고. 대뜸 이런 생각을 한 것엔 나의 앞날이 희망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행복하다가도 불행해지면 그 또한 실수해서 산 얇은 수건일 뿐이라고 바라고 싶다. 내일이 오면 두꺼운 수건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고 싶어서.
며칠 전엔 <나 혼자 산다>를 봤다. 기안84는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팔당댐을 지나 춘천 한 모텔에 도착했다. 바닥에 앉아 깡소주를 꿀떡꿀떡 마시는 그에게 다른 멤버들은 혀를 내둘렀다. 술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다 끝내 눈물 흘리는 그에게 걱정과 청승맞음을 표현하는 리액션이 이어졌다.
영상에 집중하던 코쿤이 기안에게 물었다. 형, 그래서 개운했어? 개운하면 자신을 달래는 법을 정확히 아는 거잖아. 대충 이런 말. 어떤 이에겐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그의 휴일에 관한 코쿤의 질문이 자꾸 생각난다. 내게 하지도 않은 그의 질문에 나는 답해본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달래는 법을 알고 있나?
충동이 일렁인다. 멀리 가자. 화끈하게 개운해보자. 깡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에서 울어보자. 내가 모르는,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보자. 그런데 그러고 나면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개운할까?
그러나 나는 후회가 두려운 인간. 화끈하지 못한 인간. 향수병이 두려워 이사 대신 여행 가는 인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보장된 버스표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인간. 거만한 마음이 내 안전했던 모험을 비웃는다.
그리하여 멀리 가보자. 지금 가까이 있는 것이 그리워질지언정, 멀리 온 것을 후회할지언정. 그것은 그때 가서 알 일이다. 더 멀리, 멀리 가보자.
젖은 수건이 빨래 통에 쌓인다. 빨래할 날이 다가온다. 목적지 없는 이사는 반년 남았다. 우스꽝스러울지언정 나를 달래는 법을 찾는 일도 반년 남았다지. 마음의 충동만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