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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Mar 20. 2023

삶은 티켓팅 없는 작품

김신록 인터뷰집 <배우와 배우가>를 읽고

내가 본 최초의 연극은 아주 오래전. 기억나는 건 작은 의자와 낮은 무대, 소수의 배우들이 만드는 실시간 공연. 작품 정보는 기억에 하나도 없지만 그때 느꼈던 건 내가 실시간 적으로 감동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배우들의 초능력적인 능청이었다. 자기 자신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작품 속 캐릭터 그 자체로 살아오고 있다는 듯한 천연덕스러움. 나는 그때 너무 어려 작은 거짓말 한 마디를 할 때에도 얼굴이 달아올랐기에 능청과 천연덕스러움을 동경하고 시기했었다. 이후엔 자기 자신이 튀어나와 캐릭터와 이질감이 느껴지는 연기를 마주하면 작품 보기를 중도 하차하기도 했었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관람하면서 배우에게 집중했던 시간은 거의 작품을 관람할 그때뿐이었지, 대부분의 시간은 대사나 서사, 연출에 감동하는데 썼다. 내게 중요한 건 '연기력'보다 '이야기'나 '대사'였고, 실제 작품 속 움직이는 배우보다 배우가 익혔을 텍스트가 내겐 더 궁금한 화두였다. 그러니 작품보다 배우 자신을 인터뷰하는 이 책을, 연기에 관한 지식과 연극계 정보가 삽입된 이 낯선 책을 읽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자기에 대한 성실한 발견으로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고 반응하겠다는
긍정적인 수동성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묵묵함으로

김신록 <배우와 배우가> p233

그럼에도 완독 하기 잘했다! 나는 배우도 아니고, 배우가 꿈이었던 적도 없지만 내 삶과 '연기'는 분리할 수 없는 불가피한 영역이라는 것, 혼자일 때 나와 함께일 때 나는 분명히 차이가 있으며, 그것은 아주 적게라도 '연기'가 포함된 능청스러운 나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만의 비밀스러운 방법을 찾는다는(p224) 배우 강말금, 매일 걷는 걸 빼먹지 않는다는(p211) 배우 조연희, 결국 계속하는 것의 문제 같다는(p91) 배우 김은한, 맥락이 어긋나는 것들(p151)이 인서트로 남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배우 배선희의 태도. 작품과 직업적인 관점에서의 배우들의 연기 철학은 배우가 아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나는 매 순간 단상 없는 무대에 나를 올리고, 다른 나를 연기함으로써 다양한 나로 살아가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한다. 그것은 티켓팅 없는 작품. 나와 나의 모든 세계. '외부의 조합이 그 사람'(p54)이라고, '인간은 총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p57)는 배우 김석주의 말처럼,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총합이며 사회적이고 친목적이고 취미적이고 가족적이고 개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실감하게 된다.


이제야 알겠는 것. 어려서 능청과 천연덕스러움을 동경하고 시기했던 건, 수많은 나를 감당하기 위해서. 나와 나 사이를 이질감 없이 연결하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였다는 것.


직업인에 대한 책인 것과 동시에 매 순간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며 일시적 타인으로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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