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하는 삶과 다수결의 삶, 수많은 상상에 관하여
틈만 나면 상상한다. 이른 아침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부터, 출근 준비로 씻고 옷을 갈아입는 분주한 시간에도,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도, 커피숍에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찰나에도, 커피를 들고 10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업무 중에도, 회의 중에도, 퇴근길에도, 눈 감고 누운 침대에서도, 심지어 꿈에서도 나는 나만의 상상공장을 가동한다.
끊임없이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을 상상한다. ‘그때 그랬었다면’ 하는 과거의 시간과 지금을 연결하기도 하고, 가까운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상상은 나 자신에서 타인이나 사물로 옮겨간다. 그 사람이 그때 그랬었다면? 이 사람이 앞으로 이렇게 한다면? 내가 그 사람이라면? 엘리베이터가 멈춘다면? 커피를 쏟는다면? 온통 상상만 하다 하루가 지나간 적도 있다.
상상한다는 건 상상할 시간이 있다는 뜻이며, 삶을 너무 각박하게 살고 있지 않는다는 나만의 증표이기도 하다. 상상은 내가 삶을 축적해온 시간만큼 찰나를 여러 번 살게 만들어준다. 하나의 지나간 사건은 내 안에서 여러 번 곱씹어진다. 여러 개의 상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의도치 않게 한 사건의 다양한 가능성을 훈련하게 된다. 새로운 일을 맞닥뜨리더라도, 과거의 상상으로 새로운 결정도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 더 현명하게 대처하도록 지혜를 주기도 한다. 상상을 쓸데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상상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상상조차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노년의 삶이다. 내겐 아직 다양한 노년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준비물이 없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상상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기준 삼았었다. 대상이 있고, 과정이나 결과를 상상해 나갔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노년의 삶을 사는 어른들은 부모님의 부모님이 거의 전부인데다 모두 자식 농사까지 지으셨으니 내가 운 좋게 노년의 삶을 맞이하게 된다면, 지금으로서 상상의 범위는 한두 가지가 전부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나는 결혼을 할 것이고, 출산도 할 것이며,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결혼도 하고 부모도 되는 것이다.
어릴 적 나와 동생을 환희로 맞이해주던 할머니의 미소는 손자, 손녀가 있는 행복하고 안정적인 노년의 삶을 짐작하게 해주셨다. 그런 노년의 삶만 아는 나는 직계 가족 없는 노년은 상상한 적 없었다. 가끔 가족이 없어 외롭다는 노인을 티브이에서 보면, 역시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노년의 외로움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비교적 현실과 타협하는 보편적인 삶을 살아왔다. 학창 시절엔 큰 방황도 없었고, 동창이나 동료와 치고받고 싸운 적도 없다. 처음 사는 인생,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몰라 남들이 다 한다는 건 발이라도 담가놔야 안심할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리기라도 할까 봐 집요하게 나서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반에서 항상 중간쯤은 하던 애.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던 애. 모험 같은 건 나와 상관없다고 믿었던 특징 없던 애였다. 다수결이 선택한 것을 선택하며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믿었다.
이러한 삶의 맥락으로 본다면 나는 지금쯤 결혼을 했거나, 언젠가 결혼할 것임을 확신하거나, 결혼을 목적으로 본격적인 구애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마땅히 ‘해야’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모험을 동반한 적 없던 삶은 좀 쑤셨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꼭 결혼만이 중년과 노년의 삶의 최선일지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현재의 혼자 사는 삶의 높은 만족감 때문일 테고, 결혼이 정답이 아닌 선택이라는 변화된 사회의 흐름도 한몫하는 것 같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동요하고 있음을 유럽 연합과 대한민국 통계청에서 증명했다.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이며, 그 비율이 무려 46.9%나 된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은 38.1%, 한국은 20년 만에 15.5%에서 31.7%나 상승했다는데 3년 전 통계이니, 과연 31.7%나 되는 사람들 중 결혼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직도 1인 가구의 삶을 유지하고 싶은지, 외롭거나 후회하진 않는지에 관해선 조사된 바 없는 게 아쉽기만 하다.
최근 몇 개월간 가동한 상상공장의 주제는 결혼이었다. 단지 노년에 외롭지 않기 위해 당장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까? 내가 아는 유부녀들은 날 때부터 결혼을 선택한 듯 자기 결정에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명절이 다가오거나, 부부 싸움 한 날이면 내게 비혼을 추천하기도 하지만 그 자태엔 어떤 책임감의 포스도 있어 보인다. 일찌감치 인생의 노선을 정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준비하면 되는 삶. 나는 그렇게 인생의 노선을 정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만 내 삶에 우유부단해 보였다. 그래서 누가 결혼에 대해 물으면,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방어해 왔지만 결혼에 대해 상상하면 할수록 도달한 결론은, 나는 결혼을 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건 결혼을 하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다르다. 1인 가구의 비율이 높아졌다지만 결혼하지 않는 삶은 아직 이 세계에선 모험처럼 여겨지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아직은 다수결의 선택이 곧 나의 노선이었던 삶이 뭐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싶다. 미혼인 노년의 삶을 알고 싶은 것도, 나로 비롯된 직계 가족 없이도 노년을 꿋꿋하게 사는 삶이 있는지 알고 싶은 것도 끝내 결혼하는 삶이 더 기쁜 삶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은 정답이 아닌 선택이기에 내가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 삶에 확신하고 싶었다는 것이 결론이다.
다양한 노년을 알고 싶다.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준비물을 모으고 싶다. 그래서 끝내 결혼을 확실하게 원하고 싶다.
뭐, 아직 고민할 시간이 충분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