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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Feb 05. 2023

예민함은 망신일까, 자랑일까?

옳고 그름 없는 둔함과 예민함에 대하여

꽤 오래전 들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감각에 대한 차이가 상극인 두 남자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철수와 영호는 동창인데다 나란히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였다. 학창 시절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서울에 상경해 취직한 첫 직장이니만큼 서로 의지를 하며 타지 생활에 적응해나갔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가 죽이 꽤 잘 맞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날이 치솟는 물가로 월세며 전세도 오르는 마당이니 방이 두 개짜리인 집에 함께 살기로 했다.


두 남자 모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지만 철수는 밖에서 놀다가도 꼭 한 번씩 집에 손님을 데려왔다. 코로나19로 식당의 영업시간제한이 그 이유였다. 처음 몇 번은 영호의 동의를 구했었다. 타지에서 외롭던 영호도 철수의 손님과 곧잘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 몇 번은 철수와 그의 손님들이 예고 없이 출몰했다. 영호는 잠옷 차림으로 제 방에 누워 있다가도 거실에 위치한 화장실에 갈 때마다 갖춰 입어야 했다. 영호는 이해했다. 오죽 즐거우면 저럴까 싶었단다. 그런데 그 몇 번이 열 번이 되자 영호도 슬슬 짜증이 났다. 아무리 방이 분리되어 있어도 철수는 룸메이트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영업시간제한이 완화되기만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철수의 손님들도 나름 선량했다. 영호를 배려한답시고 방음 잘 안되는 벽 하나를 두고 소곤소곤 말했다. 그들은 영호의 몫까지 식사나 디저트를 챙겨주었다. 사실 영호는 그게 더 불편했지만, 성의를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열 번이 스무 번이 되고 반년이 되었다. 그래도 영업시간제한이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영호는 철수에게 말했다. 손님을 데려오기 전에 얘기해 줄 수 있겠냐고, 덜 자주 데려와줄 수 있겠냐고. 철수는 말했다. 아, 미안!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신경 쓰였나 보다. 다음부터 내 방으로만 부를게.


둘의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하루 이상 설거지 쌓아두기를 싫어하는 영호와 달리 철수는 새 접시가 안 보일 때까지 설거지를 안 했다. 철수는 늘 샤워볼을 보디워시와 함께 욕실 바닥에 던져두었고 영호는 샤워 즉시 꼭 건조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철수는 눈에 보이는 큰 먼지만 청소했고, 영호는 때 빼고 광을 냈다. 청결도의 기준이 달랐다. 영호는 철수를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철수는 영호를 깔끔 떤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런 생활은 계속되었다. 철수의 손님은 철수의 방에서 소곤거렸고, 여전히 집안일에 소극적이었다. 철수는 영호가 참고 있는 줄도 모르고 본인의 생활 패턴에 적응한 거라 착각했다. 자기 집임에도 편히 쉰 적 없는 영호는 어느 날 울화통이 치민 나머지 철수에게 화냈다.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화내는 영호에게 되려 철수는 네가 예민한 거라며 큰소리를 쳤다. 영호는 황당했다. 뭐? 내가 예민한 거라고?


내가 아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들이 지금도 아직 친구일지, 함께 사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과 있었던 의견 충돌은 이야기와 함께 세트로 선명하다. 나는 내가 영호 당사자라도 된 듯 분노했고, 그는 되려 예민한 영호가 민폐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호처럼 황당했다. 그가 좀 미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호 편이었다. 우리는 대화를 어영부영 마무리했다.


며칠 전, 두 남자 이야기를 글로 옮기다가 그에게 이 이야기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처음에 그는 그게 뭐였더라? 하더니 아, 김철수? 걘 왜? 하길래, 네가 이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조금 다툴 뻔한 것도 기억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가 언제 그랬냐며, 처음 듣는 얘기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또 영호처럼 황당했다. 그날의 어색했던 공기와 함께 마셨던 술 종류까지 기억하는 건 나뿐이었다.


김지승 <짐승일기>, 96쪽엔 ‘기억은 욕망의 선택’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그렇다면 대화를 나눈 사람도 기억이 흐지부지한 이 이야기의 무엇이 그토록 내 욕망에 가닿았을까? 그것은 내가 ‘영호’였던 적이 많아서 였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철수 같은 사람이 좀 미웠다. 자신이 무디다는 걸 무기로 삼는 사람. 그래서 예민한 기질의 사람을 탓하는 사람을 미워했다.(그들은 위기에 봉착하면 ‘네가 너무 예민한 것 아냐?’라며 망신을 준다. 그 말은 예민한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예민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그들은 타인의 표정을 전혀 살피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도 스스럼없었다.(같은 책, 74쪽) 또 그럴 때마다 내 예민한 기질로 사소하게 그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 그들처럼 그들과 주고받았던 대화를 잊으려고도 노력했다. 노력과 별개로 나는 늘 그러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미운 사람만 늘어갔다. 별걸 다 기억하는 내 기억력을 증오했다. 그 시절 일기엔 기억을 잘 하는 건 벌이나 다름없다는 문장도 쓰여있다. 화병의 근원일 뿐이라며, 예민한 기질의 사람은 타인과 오래 어울리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관계에 실망하기 싫다는 감수성 짙은 어리광도 기록되어 있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타인과 내면 사이를 덜 충돌하는 법도 터득했다. ‘예민한 기질의 사람들은 감각한 대부분을 감각 못한 척하는 데 능하다’(같은 책, 162쪽)는 말처럼, 평생을 예민하게 살아온 그 감각을 타인 앞에선 ‘아무것도 몰라요.’로 변장시키는 것.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이든 상관없어 기분이나 감정 흐름이 무심한 사람으로 사회에 섞여 지내보기도 수년째다.


그 단순한 방법이 잘 통했는가를 묻는다면 글쎄, 반반인 것 같다. 잘 숨겼다고 생각하다가도 종종 세상에 숨어있는 동족이 눈치도 없이 알은채를 해왔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 많기로 소문난 예술계에 오래 종사해온 A 언니는 어느 날 나더러 ’너도 나처럼 쎄-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든지, 간단한 심리테스트 결과마다 ‘예민한 기질’의 소유자로 평가되었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그때마다 어색하게 웃던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연기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흘러가는 걸 보면, 예민함이 꼭 기죽을만한 기질은 아닌 것 같다. 서점에만 가도 알 수 있다. <예민함이 너의 무기다>, <예민함이라는 선물>,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 등 예민을 하나의 긍정의 소재로 활용하는 책이 점점 자주 출간되고 있다. 그뿐일까. 전홍진 교수(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느 인터뷰를 통해 ‘예민함은 능력’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찬양을 앞세워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말에 더 이상 움츠려있고 싶지 않아졌다. 한 번쯤은 무딘 사람에게 무례하다고도 말하고 싶고, 언젠가 이것이 나의 자랑이라고도 소개하고 싶다. 별 걸 다 기억하는 바람에 당신도 지나칠 당신의 시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냐고, 수많은 욕망 덕에 자기 자신을 더 깊이 공부하지 않냐고 말이다. 머지않아 그럴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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