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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Nov 28. 2022

영도를 아시나요

나는 왜 좋아하면 대상이 되고 싶을까?

부산광역시에 속해있는 ‘영도’구는 제주도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내 도시다. 살면서 부산에 대해 대화할 때마다 나는 꼭 영도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부산 사는 이는 왜 하필 영도냐고 묻고, 부산을 잘 모르는 이는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사실 영도를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상반된 반응들이다. 부산 사람도 갸우뚱할 만큼 관광적이지 않은, 타지인은 생소할 정도로 인기 없는 그저 그런 동네, 영도.


영도는 부산에 속해있지만 다리를 건너야 밟을 수 있는 섬이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란 내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멀기만 한 영도를 아는 건 다 짝사랑 때문이다. 영도에서 태어났다던 그를 생각하면 여전히 기본 안주로 떡볶이가 맛있는, 옅은 오바이트 냄새가 풍기는 대학가 술집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막 성인 된 스무 살이었고 그는 나보다 딱 네 살 많은 대학 선배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게 군대까지 다녀온 그는 누구보다 내게 어른이었다. 또 제대 후 여유로운 복학생의 신분인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성격이 입대 전보다 더욱 활성화되어 있었다. 모든 게 서툰 스무 살인 내게 조금의 자만이 섞인 그의 유능한 말재주는 서투름을 용납하기 어려워하던 그 시절, 나에게 있어 또래 남자애들을 모두 흑백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지녔었다.


그와 친해진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술자리에 꼭 하나씩 껴있는 술 좋아하던 복학생 오빠들 중 한 명이었고, 나는 내 주량도 모르면서 술자리에 꼭 끝까지 남아있는 마지막 멤버였다.


지금의 추앙 천재 손석구가 내 확신의 이상형인 걸 보면, 십여 년 전부터 이미 무명의 손석구를 닮은 그의 외모가 내 마음 깊숙이 박힌 건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교복 벗은 티 안 나는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재수 없게 마초스러운 그를 동경했다. 대화도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오후 네시에 만나 새벽 네시까지 대화만 해도 즐거웠다. 그러고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차고 넘쳤다. 그러니까 그는, 내 마음에 들어온 첫 어른 남자였다.


동기들과 함께 그의 집에 놀러 간 날, 그가 글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를 향한 내 마음이 동경이 아닌 사랑인 걸 알았다. 티브이가 있어야 할 벽 한쪽은 책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엔 여러 번 읽어 모서리의 코팅이 벗겨진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가 꽂혀있었다. 그의 먼 미래의 꿈은 시나리오를 쓰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때 다짐했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어야지. 그를 따라 글을 써야지. 그래서 그와 좋아하는 책 이야기나, 글 쓰는 이야기를 해야지. 그러니 내가 일기나 독서를 좋아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건 모두 개뻥이다.


그때까지 나는 짝사랑이란 아이돌이나 멋진 선배를 흠모하는 일 정도로 여겼었다. 연인을 목적으로 하는 짝사랑은 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고백할 마음도, 용기도, 그것에 가까운 시도를 할 생각도 당연히 못했다. 나는 그저 그가 나를 지연아, 대신 심지연아,라고 부르는 게 좋았고 하루 한 시간씩 걷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 나는 그를 따라 유혹하는 글쓰기를 배우고 한 시간씩 걸었으며 보라색 양파를 좋아하게 되었고, 유행 다지난 스냅 백을 썼다.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거다. 대화가 많은 사이였으니 마음을 알아채기도 더 쉬웠을거다. 이따금 그가 내게 설마 나 좋아하냐?라고 자만하게 물으면 그가 나를 친구로라도 안 만나줄까 봐 너무도 안 당연하듯, 당연히 좋아한다고 유머스럽게 받아쳤다. 술 마시고 울면서도 웃으면서 받아쳤다. 몰랐을 리 없는 그 마음은 해가 거듭날수록 디폴트가 되었다. 나쁜 남자가 아니고 나쁜 인간이었다. 거절 없는 거절은 나로 하여금 그를 더 숭배와 추앙의 길로 인도했다. 그는 여전히 내가 되고 싶은 세계를 가진 첫 어른 남자였다.


그래서 부산에 내려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친구를 꼬셔 밑도 끝도 없이 그도 없는 영도에 갔다. 아기자기한 골목이나 알록달록한 벽화가 모여있는 ‘흰여울 문화마을’도,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멋진 ‘절영 해안 산책로’도, 갓 잡은 해산물과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영도 해녀촌’도 모두 섭렵했다. 그뿐이랴. 블로그에 소개되지 않는 동네를 내가 자라온 동네처럼 걸었다. 어린 시절의 그가 되어 걸었다. 영도대교를 걸었을 그를 따라 걷고, 땀 흘리며 언덕을 올랐을 그를 따라 오르막을 올랐다. 교차로 근처 횡단보도에서 손들고 건넜을 그를 따라 길을 건너고, 하교 후 꽈배기 사 먹었을 분식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시작도, 끝도 없는 짝사랑은 결말도 없었고 그를 사랑하지 않은지 얼마만큼이나 지난 지도 모른 채 나는 해마다 영도를 여행했다.


그래서 난, 지난 주말에도 영도에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부산 해운대 여행이 있었지만, 영도를 여행하기 위해 굳이 이틀 먼저 금요일 밤 기차를 타고 홀로 부산에 내려간 것이었다. 그를 여전히 사랑해서는 아니었다. 그가 없는 세계에서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동안,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글을 쓰는 동안, 그의 고향인 영도가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차에 실려 내려가는 동안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검색했다. 그가 썼다는 소설도 조금 읽었다. 오래전 그의 미니홈피에 게시되었던 습작 시를 외웠던 일도 생각났다. 너무 많이 읽어서 저절로 외워졌었다. 추억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 글이 이제는 세 글자 빼곤 아무 말도 기억나지 않는 사실도 아쉽지 않다고 생각하며 부산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자정 삼십 분 전, 부산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남포역으로 향했다. 부산역에서 남포역으로 향하는 주황색 노선의 지하철 안은 여행객이 불청객처럼 느껴질 만큼 귀가하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두 밤 짜리 혼자만의 숙소는 영도대교 하나만 건너면 영도로 입장할 수 있는 남포역 앞으로 정했다. 왜 영도에서 숙박하지 않았냐면, 이번 여행의 목적은 대중교통을 타고 여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영도 여행은 영도에서 숙박하기, 숙박하는 동안 걸어서 영도 여행하기, 택시 타고 이동하기 등 비교적 이동이 쉬운 범주에 속한 여행이었다. 모든 여행이 즐거웠지만 무언가 늘 부족한 기분이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빠져있는 기분. 그건 바로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구는 것. 나는 늘 영도에 올 때마다 영도에 사는 사람처럼 굴고 싶었었다. 자정의 부산 지하철 안 풍경처럼, 부산으로 귀가하고 싶었다. 오래전 그를 좋아해 그의 모든 걸 따라 했던 것처럼, 영도에, 영도와 가까운 남포동에 사는 사람처럼 굴고 싶었던 것이다.


남포역 앞 작은방에서 잠든 첫 번째 밤이 지나고, 초겨울 같지 않은 11월의 더운 부산의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자마자 나갈 채비를 했다. 원마일웨어(자택에서 1마일 권내에 착용되는 의복)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영도대교 앞 버스정류장. 정겨운 사투리를 쓰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합류했다. 한자리 숫자의 자그마한 버스를 탔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영도대교를 건넜다. 옆자리엔 연두색 소쿠리를 옆구리에 낀 할머니, 앞자리엔 사투리로 통화하는 대학생 차림의 청년이 앉았다. 버스는 1분마다 정류장에 정차했다. 걷거나 택시를 타고 하는 여행과는 다른 묘미였다. 주민 사이에 ‘속해’있는 것 같았다. 타지에서 도시를 휘젓는 촘촘한 노선의 버스를 타는 것만큼 도시를 잘 아는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독특하다고 할 것도 같다. 나는 왜 좋아하면 대상이 되고 싶을까?


나는 네가, 나는 너를, 나는 영도를, 나는 영도에 사는 사람처럼, 나는 너처럼, 고향이 영도이고 싶었다. 나는 너처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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