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연 Oct 30. 2022

그런데 나 아직 닭죽 안 먹었어

결혼과 우정, 시절 인연이라는 슬픈 말에 대하여

우정의 크기로 핏줄이 되는 인연이 있다면 그건 너와 나에게 해당하는 관계일 것이었다. 다정함의 정도, 서로에 대한 깊이, 식성, 주량까지 비슷한 우리는 십 년 간 사소한 다툼 한 번 없었다. 그런 너는 몇 해 전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했다. 나는 네가 아는 사람 중 그 누구보다 너를 축복했었다. 결혼하면 멀어진다던 흔한 말도 너와 내 우정엔 한 틈의 영향도 없었다. 먹는 게 가장 큰 행복인 너의 화려한 주방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었다. 엄마가 된 너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커리어와 워라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걱정에 대하여, 이사 갈 집 주변 어린이집과 마트 크기를 궁금해하는 너의 호기심에 대하여, 혼자만의 긴 휴가를 준비하는 내 다음 여행지에 대하여.


여름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네가 끓여준 닭죽을 먹을 수 있어서였다. 네 요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복날에 네가 끓인 닭죽을 먹는 건 여름을 맞이하는 우리만의 오래된 행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김없이 찾아온 초복엔 연차를 내고 너의 아파트에 갔다. 네가 닭죽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너의 네 살 난 딸과 시간을 보냈다. 그 애는 다른 아이와 다르게 내게 더 특별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어난 직후, 신생아, 옹알이… 커가는 거의 모든 과정을 내 눈과 너의 휴대폰 렌즈를 통해 봐왔기 때문이었다. 만날 때마다 더 사람 같아지는 그 애가 무척 사랑스러워 평생 엄마가 아닌 이모로 남아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너는 그런 나를 조금 못마땅하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너는 이따금 나도 엄마이기를 바랐었다.


닭죽의 감칠맛은 해가 지날수록 더 진해졌다. 육아휴직을 한 후 너의 요리 실력은 더욱 수준급이 되어갔다. 너는 닭죽을 호호 불어 딸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그런 너를 보며 나도 닭죽을 호호 불어 크게 한입 먹었다. 너는 다른 도시에 지어진 키즈카페의 잘난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 세계를 반쯤 궁금해하며 직장에서 있었던 황당하고 억울한 일을 꺼내 열변을 토했다. 너는 동의에 가까운 옅은 공감을 하며 얼마 전 친해진 같은 동에 거주하는 젊은 엄마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화제 전환을 했다. 나는 여름이 지나면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너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사는 친정엄마를 그리워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집을 나서는 내게 너는 냉동 보관하라는 말과 함께 밀폐용기에 담긴 따끈한 닭죽을 담아 건넸다.


우리는 중복 조금 지난 한 여름에 다시 만났다. 함께 알고 지내는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너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너를 기다렸다. 멀리서 천천히 달려오는 너의 차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남편에게 맡겼다며 자유라고 좋아하는 너는 조금 지쳐 보였다. 어린이집 여름 방학과 남편의 장기 출장으로 독박 육아 신세였던 너는, 집이 철장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더랬다. 나는 좀 뻔한 위로와 응원을 했던 것 같다. 위로에 걸맞은 힘 빠진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차는 긴 터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곧 독립할 거라는 기쁜 계획을 가장 먼저 너에게 말했다. 나는 나만의 휴식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말 많고 관심 많은 우리 식구들 복작거리는 집에서 절대로 온전히 휴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른에 독립하겠다는 소망은 내 오랜 바람이었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넌,

너 시집 안 갈 거야? 라며 나를 책망하듯 말했다. 폭염에 아스팔트가 일렁거렸다. 나는 하고 싶은 대답과 듣기 좋은 대답을 입안으로 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잠시 붕 떴다 가라앉았다. 미처 발견 못한 방지턱 때문이었다. 이윽고 터널에 진입했다. 나는 나에게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차에 실려있었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밖으로 향하는 문은 꼭꼭 닫은 채, 나는 입을 닫고 그저 터널의 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달리는 차에서만큼 진심을 잘 말할 수 있는 장소도 없다는 걸. 달려온 만큼 되돌아가는 일은 무르기 어려워서, 눈을 마주 보지 않아도 돼서, 어색함을 음악으로 대체할 수 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어서. 그러나 어떤 진심은 용감해야 말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아무 말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적막을 깨운 건 터널을 빠져나와 마주한 따가운 햇볕이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터널 안에서의 까칠한 분위기는 오래전 일 같았다. 식장에 도착해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했다. 하나같이 결혼을 계획 중이거나 앞두고 있었다. 화두는 당연히 결혼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스드메, 혼수, 예물, 예단 같은 정보가 날아다녔다. 대화에 관심 없는 건 나밖에 없었다. 일말의 노력 없는 내게 그들은 시험지 커닝하다 들킨 학생을 바라보듯 한심한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건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꼭 정상에 먼저 도착한 사람처럼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던. 언제 철들 거냐고 묻는 것 같았던. 나는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너를 봤다. 터널 안에서의 대화를 상기시켰다. 내가 걷는 산은 너랑 같은 산이 아냐. 한마디면 되었을까. 아니면 수능시험이라도 낙방한 사람처럼 굴었어야 됐을까. 서른에 결혼 아닌 독립을 하는 게 꼭 죄를 지은 것 같아서, 독립할 거란 계획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형식적인 안부를 뜸하게 주고받았다. 얼마 후 너의 목소리가 아닌 인스타그램을 통해 네가 임신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복직만 바라고 있다던 네 목소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나는 또 그날의 긴 터널을 떠올렸다. 너는 다른 말없이 나와 대화를 주고받던 채팅방을 나갔다.


말복엔 냉동실 문을 열어 네가 지어준 닭죽을 노려봤다. 수시로 문을 열어 먹지도 않고 노려봤다. 균열은 눈치도 못 챌 정도로 미세한 틈을 파고들어 오고 있었나 보다. 아니, 실은 딱 균열의 미세한 정도만 눈치챘었던 것 같다. 어차피 우리가 멀어질 거라는 가능성은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는 확실하게 연락을 끊었다. 나도 그런 너에게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를 지켰다고 생각한 수많은 마음과 대화는 우리를 통과해 소멸되었다. 나는 너의 활발히 업데이트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만 새로고침해 볼 뿐이었다.


말복 한참 지나 낙엽 떨어지는 오늘까지 닭죽은 냉동실 한편에 보관되고 있다. 이제 너의 인스타그램 팔로우 목록엔 내 아이디는 없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문자하는 일도 없다. 덩어리진 닭죽은 더 꽁꽁 얼어 보이기만 한다. 오래 데워도 그 맛이 처음과 같지 않을 것 같다. 어쩐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우리 관계 같기도 하다. 너를 향한 마지막 남은 애틋함을, 염치없는 우리의 우스운 우정을 내 손으로 털어내는 것 같아 먹을 게 닭죽밖에 없어도 안 먹었다. 나는 이제 복날에 네가 지어준 따끈한 닭죽을 먹을 일도 없지만, 냉동실에 얼어있는 냉동 닭죽을 먹을 수도 없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