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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Feb 02. 2022

오늘부터 식집사

이랑 <아무튼 식물>을 읽고, 초보 식물 집사 되기

두 달 전 이사 온 집은 베란다가 방만큼 크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침대 네 개 정도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다. 별생각 없이 대충 창고로 쓰다 날이 풀리면 여럿이 술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주변인들은 종종 말했다. 텃밭이나 식물 키우는 용도로 활용하면 어떻겠냐고,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전하는 답은 "식물은 절대 키우지 않을 예정입니다."였다. 다년간의 화려한 경력 때문이었다. 나는 남향에서도 키우기 쉽다는 꽃기린, 스투키, 유칼립투스 등 여러 식물을 마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렇게 두 달간 창고로 방치한 베란다는 점점 쓰레기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삿짐 그대로 뒤죽박죽인 박스부터 시작해 집들이 선물로 받은 휴지 더미들까지, 지난 일주일은 그 꼴이 보기 싫어 햇빛도 필요 없다며 커튼만 치고 살았다. 기승을 부리던 추위가 조금씩 사그라들자 방치한 베란다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내엔 내 키보다 큰 숲 사진의 패브릭 포스터까지 들여 정성을 다해놓고 바깥은 저 모양이니 이질감이 든 것이다.


식물을 키우기로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저 이 집에 사는 동안 어떻게든 작은 공간도 '잘' 활용하고 싶었다. 곧 퀴퀴해질 것 같은 베란다를 심폐 소생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만한 데엔 식물보다 더 좋은 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실행하기에 앞서 자기 검열(?)은 있어야 하니 관련 책을 읽고 결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당장이 될 줄 몰랐을 뿐이다. 포항 여행 중이었고 동네책방이었다. 환경 코너에서 <아무튼, 식물>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출판사 코난 북스, 제철소, 위고에서 펴내는 에세이 '아무튼 OO'은 그간 내 여러 가지 관심사에 큰 비중을 차지한 시리즈다.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 중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술, 메모, 싸이월드 등은 좋아하는 것을 덕질하며 읽는 쾌감을 선사했다. 저자 또한 한 가지 소재로 한 권을 쓸 정도의 'OO'의 덕후라고 할 수 있으니, <아무튼, 식물>을 읽고 식물 키우기에 대해 공부해보면 좋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아무튼, 달리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오전 달리기를 했던 한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ktx 포항 > 오송에서의 독서


물을 충분히 머금고
통통해질 대로 통통해진 이파리들이 좋다.

임이랑 <아무튼, 식물>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지는 것보다
더 능동적으로 살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임이랑 <아무튼, 식물>



그 마음이 궁금해 여행을 마치고 올라오는 기차에서 책을 모두 읽었다. 그리곤 가져온 일기장에 '식물 키우기는 나를 지금보다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적었다. 동물원, 수족관과는 다른 식물원만이 가질 수 있는 안심과 클린한 분위기...! 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초록'인걸. 텃밭도 만들어 채소는 소소하게 자급자족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경력이 좋진 않지만 성실하게 임하면 식물들도 마음을 알아줄 거야.


아, 큰일이다.

나 지금 식물 덕후 '뽕' 찬 거 맞지.


맞다. 포항에서 돌아오자마자 무작정 집 근처 화원으로 갔다. 가장 좋아하는 '유칼립투스'와 인터넷으로 발견한 '벤자민 고무나무'를 찾아 초보자는 민망함도 모르고, 망설임도 없이 데려가고 싶다고 외쳤다. 제대로 키워보기도 전 앞선 욕심에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오렌지 라임 나무'까지 데려오기로 했다. 사장님께서 분갈이는 같이 봐야 나중에 직접 할 때 안다며, 화원 구석으로 부르셨다. 커다란 박스에 고루 섞인 흙과 삽을 보니 덜컥 겁이 났던 것 같다. 앞으로 책임져야 할 식물들이 내 베란다로 이동할 채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갑자기 내린 결정으로 잠시 혼란이 찾아왔다. 한참 분갈이 중인 사장님께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니 다들 처음엔 어려워 하지만 나중엔 본인보다 더 고수가 되어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오죽하면 '식집사'라는 말이 생겼겠냐고. (나는 처음 알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니, '식집사'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될 터였다. 내가 집사라니, 그 점이 내게 더 책임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에 온 날 준 첫 끼!



잘 만들어진 식물원은
작고 완벽한 우주 같다.

임이랑 <아무튼, 식물>



한 박스에 낑겨 데려온 화분 세 개를 차례로 베란다에 옮겼다. 해가 잘 드는 위치가 어딜까 하며 요리조리 옮겨도 보았다. 일기장을 찢어 '식물 밥 일지'라고 쓰고 벽에 붙였다. 화분마다 꽂혀있는 푯말에 적힌 물 주는 주기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화원을 나서기 전 사장님이 한 말씀이 생각났다. 물 주는 양과 시기는 식물과 내 집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맞춰가야 한다고. 글쎄, 그 말이 더 설레는 건 왜일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아채 줘야 한다는 것처럼.


나는 화원에서의 혼란도 모두 잊고 식물들만 들을 수 있는 크기로 작게 읊조렸다.

우리 집에서 잘 지내보자.

나의 작고 완벽한 우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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